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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할머니 수녀님과의 산책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할머니 수녀님과의 산책

하나 뿐인 마음 2023. 9. 18. 09:53

서원한 후 본당 수녀만 했다. (지원자 시절, 우리 수도회는 본당 소임이 별로 없다는 말에 안도했던 사람이 나인데…) 심지어 지금은 종신서원을 하자마자 소임을 받아 3년을 꼬박 살았던 본당에 거의 10년 만에 다시 와서 소임 중이다. 본당 소임에다 작은 분원에 살면 소소한 일까지 나눠서 해야하니 각자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 나는 사실 오르간이 어렵다. 잘 치지도 못하지만, 그것보다는 성무일도 중에도 미사 중에도 늘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이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오롯한 집중’이 그립다는 말. 몸이 좀 안좋을 때나 마음에 고민이 있을 땐 더더욱 ’오롯한 집중‘이 소원이다. 그래서 피정을 오면 오롯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성무일도 시간에도 오로지 찬미를 바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번에도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 피정에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미사 반주를 해야했다. 불만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피정 첫날 명단을 훑어 보니 답은 분명했다. 하느님 앞에 무엇을 제일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지가 분명했다고나 할까. 저녁기도 반주를 책임져줄 젊은 수녀님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당에 앉아 있으니 감사할 거리가 눈에 더 들어왔다. 성무일도 독서를 하기 위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성경을 들고 중앙복도를 천천히 지나 독서대로 매번 걸어나가시는 선배 수녀님, 나보다도 선배인데 촛불을 켜고 미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언니 수녀님, 제일 앞자리에 앉아 미사든 강의든 집중하시는 선배 수녀님들, 기다리고 비킬 줄 아는 모습…

3일째인 오늘은 주일 미사를 드렸다. 이번 피정에는 거의 대부분이 할머니 수녀님들이시라 사실 노래로 바치는 시간경도, 미사 때 부르는 성가도 반주하기가 쉽지 않다. 음이 많이 떨어지니 오르간 소리와 차이가 도드라질까봐 크게 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게 치면 밸런스를 맞출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는 들리도록 쳐야하기 때문.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열심히 성가책을 들고 노래하시는 수녀님들. 50 초반인 둘은 반주를 하고, 50-60대 수녀님들도 독서를 하고 화답송을 하고, 70-80대 수녀님들이 보편지향기도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정성껏 바쳐주셨다. 오르간에 앉아 있으니 기도문 종이를 정성껏 들고 있던 떨리던 손도 보이고, 크게 말하려고 몇번이나 목을 가다듬던 준비 자세도 보이고, 또렷하게 말하려고 입을 한껏 벌리시며 십자가를 응시하시던 모습도 봤다.  그리고 이 모든 귀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건 오르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노을을 보기 위해 서둘러 산책을 했다. 서너 바퀴를 돌았을 즈음 할머니 수녀님께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어두워서 혼자 가기가 무서우니 그곳까지 함께 걸어 가줄 수 있겠냐 하셨다. 흔쾌히 대답하고 휴대폰 조명을 비추며 함께 걷는데, 목이 잠기지 않고 제대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기 위해 얼마나 기도하셨는지 모른다는 말을 꺼내셨다. 수녀님과는 분원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어서 기관지가 얼마나 안좋으신지를 알고 있기에 얼만큼의 걱정이고 얼만큼의 노력인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으실 연세이신데, 모든 게 정성이고 기도였구나 싶었다. 또 일제 치하, 공산당 치하에서 말도 못할 고난을 겪으셨던 초창기 수녀님들의 ‘품위’를 말씀하시면서 그분들의 신앙을 부러워하시고 당신의 부족한 신앙을 부끄럽다고도 하셨다. 지금 우리는, 당장 수녀님의 신앙과 겸손이 부러운데 말이다.

가던 길을 돌아서 다시 피정집을 향해 걷는데, 조금 전에 본 지는 노을이 왜 그렇게, 사무치도록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았다. 저녁 노을은 서두르진 않지만 금세 아름다움을 거두어 들였다. 찬란하게 물들지만 공들인 것을 거두는 일에 자신의 기분을 쏟지 않는구나 싶었다. 할머니 수녀님과의 잠깐 동행이었지만 그 순간 또한 내겐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하느님은 매일매일 내게 선물을 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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