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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큰 오르간으로 연습합시다 본문

피정 중이긴 하지만 주일과 대축일을 위해 성무일도 성가 연습을 함께 했다. 피정자 중에서 제일 젊은 나도 수녀원에서 24년째 살고 있고, 다들 40-50년은 기본이신 선배수녀님들이신데 수십 년을 불러온 노래를 또 연습한다는 말에 어느 누구도 불평을 않으셨다.
음이 좀 높고 까다로운 시편 후렴 연습도 끝나고, 문제는 제1저녁기도 찬미가. 갑자기 이곳 장상 수녀님께서 20일 찬미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26일 찬미가를 제1저녁기도에 부른다고 하신 것. 입회 후 나는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곡이었는데(반주자 수녀님도 모르는 곡이었다.) 의아함만으로 이의를 제기할 순 없는 노릇이라 눈치를 보며 연습을 했다. 연세가 많으신 수녀님들은 83년까지는 복자 축일을 지내셨으니(그래도 40년이 지났는데,,,) 희미한 기억으로 노래하셨고 아니다 다를까 다들 익숙하지 않은 곡이라 연습이 조금씩 어수선해졌다. 나만 해도 분원 전례 담당이고 다른 수녀님들도 분원장이든 전례 담당이든 다들 알만큼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이었는데 곧장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으시는 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이게 맞나 싶어 확인하는 걸 보신 피정집 장상 수녀님께서 당신 책에는 그렇게 적혀있다고 말씀하셨고(너무 오래 전 메모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수녀님들은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아셨겠지만 준비하신 분의 의견을 존중하시며 생각을 내려놓으셨다. 그랬다해도 조금은 찝찝한 상태인지라 연습 시간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는데 뒤쪽에 앉은 한 수녀님이 “우리가 잘 모르겠으니 기왕이면 큰 오르간으로 잘 들리게 연습합시다!”하고 말씀하셨고 큰 오르간까지 치진 않았지만 큰 목소리로 한 번 더 연습을 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그건 잘못되었고 20일 제날 찬미가를 제1저녁기도에도 노래해야 한다고 바른 말씀을 하셨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수녀님이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었다. “불필요한 연습이니 여기서 끝냅시다!”가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겠으니 기왕이면 큰 오르간으로 잘 들리게 연습합시다!”로 마무리된 시간. 그 수녀님의 말씀이 오늘 하루종일 그 어떤 기도보다 더 아름답게 내 마음 속에서 공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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