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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장례 미사를 다녀왔다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장례 미사를 다녀왔다

하나 뿐인 마음 2023. 2. 25. 23:56

신부님 어머니 장례미사에 다녀왔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 뿐이라 장례 미사를 가면 늘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되는데 오늘도 어머니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의 마음을, 자신의 방에 한참 동안 두었던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제대 앞에 놓아야 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게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다. 
 
엠마 어머니는 치매를 오래 앓으셨다. 멈춘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아들 신부도, 행동의 순서도, 언어까지도 천천히 잊혀갔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던 건 기도문이었다고 한다. 그 기도문은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 아니라, 어쩌면 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을까. 평생 수도 없이 말했던 무수한 단어들은 거의 모두 잊혔지만 끝내 남았던 기도문.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졌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 곁에 끝까지 남았던,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문 같았던 아들 사제.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 습관마저도 사라진 투명한 영혼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기도문을 생각했다. 평생 뇌었던 말이라 해서 모든 말들이 남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밥 먹어라."를 평생 말씀하셨어도 그 말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아니다. 수도 없이 습관적으로 행했던 동작도 눈 녹듯 사라져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자연스러운 동작마저도 거짓말처럼 멈출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그 기도의 언어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내 생의 마지막 순간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대면할 때마다 우리들끼리도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는, 죽음에서마저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했고 앓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두려워했지만, 오늘부터는 내 의지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순간에도 남아 있을, 엠마 어머니의 기도문 같은 것을 내 온 몸에 각인시키며 살아야겠다 싶었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놓아도 놓아지지 않는 기도의 언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 같은 기도의 말을 부단히 내 영혼에 새겨야겠다 싶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홀로 남아 보낼 이 밤에 잘 계신가를 확인하고 잠들기 전 다시 엠마 어머니의 삶을 생각했다. 단단하고 조용하지만 지극했던 사랑은 어머니에서 끝나지 않고 아들에게로 고스란히 넘어가 더 깊어졌음에 내가 위로 받는다. 엠마 어머니, 천국 본향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다시 만날 때 그날처럼 또 손 흔들어 주세요. 그날 제가 돌아선 후에도 손 흔들어 주셨으니 어머니께서 하늘 향해 돌아서신 오늘부터는 제가 손을 흔들겠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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