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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 (134)
깊이에의 강요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음식이 중요하니까 음식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서일까요, 사람이 깨끗한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탓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시며 군중을 가까이 불러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곳에 와 보니, 청년 미사에서 전례를 하는 사람은 치마를 입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전례 봉사를 하는 사람은 무조건 치마를 입을 수 없다는 그 규정을 전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는 ..
지난 주 인도에서 힌두 축제 중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죄를 씻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어 밟혀 죽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요. 죄를 씻고자 모인 행사에서 '내가 먼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마음은 더 큰 죄라는 결과를 낳았던 건 아닌가. 죄를 씻기 위해 타인을 밀치거나 제쳐둔다면, 다치게 한다면, 심지어 죽게 한다면 그 씻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복음에도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도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가는 사도들을 보고 육로로 달려갔고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내가 먼저 예수를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달려 그곳에 다다랐고, 함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개인적 욕심..
지금도 선교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오늘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셨던 말씀 중에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냉담한 이들의 싸늘한 반응에 상처 입지 말고, 섭섭한 마음을 간직하지 말고 잘 털어버리고 다음 선교지로 가라는 예수님의 현명한 충고입니다. 살다보면 분명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도 오해를 받거나 거부를 당할 때가 있지요. 물론 서운하고 마음 아픈 일이긴 합니다만 그 아픈 감정을 내내 마음에 지니고 살아갈 순 없습니다.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리듯 케케묵은 먼지가 되기 전에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속상한 감정은 우리들 마음을 얼마나 ..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싹이 트고 줄기가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면 많은 것들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곤 했나 봅니다. 뭔가를 주어야 한다, 먹여야 한다, 주어야 한다, 먹여야 한다.... 지난 시간은 제 나름 열심히 달려서 채웠습니다. 그리 큰 후회는 없습니다만, 지난 2년 반 동안 당신은 제게 오셔서 얼마나 쉬실 수 있었나 문득 생각이 나, 묵상 중에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에도 괜히 목이 메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제게 오셔서 쉬십시오. 제 안에, 비좁고 조촐한 제 마음 안에 오셔서 깃들이십시오. 본디 당신 것이고, 당신의 보금자리이오니 당신 자리를 차지하고 편히 누우십시오. 당신과 함께 머무는 것, 그 순간과 그 자리가 제겐 '하느님의 나..
오늘날 예수님을 섬기고 싶은 누군가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하고 다시 묻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이천 년 전 예수님은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의 집주인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그 말씀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겠다던 우물가도 떠올리게 되고 우리들의 세례도 떠올리게 되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카나의 혼인잔치 마저도 떠올리게 하는 물동이를 아예 집으로 옮긴 '주인'이, 제자들이 묻기도 전에 이미 정성껏 준비한 방을 보여주었지요. 오늘날 누군가가 다시 예수님께 질문한다면, 그 '주인'대신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실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묻기도 전에 이미 잘 준비된 방을 언..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곧 수난과 죽음을 다가올 것을 알고 스스로 들어가시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구원자로 환영하며 빨마 가지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아셨던 예수님은 당신을 환호하던 사람들의 발 빠른 변심도 아셨을 것입니다.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당신에게 닥친 모든 시간을 다 겪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성지 주일을 지내는 우리는, 같은 입으로 예수님을 환영했다가 며칠 후 같은 입으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이웃을 험담하고 타인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다면 오늘날의 예수님은 또다시 수난의 길을 걸으셔야할 것입니다..
나를 수시로 넘어뜨리는 돌뿌리 중 하나는 '옳고 그름'이다. 물론 그 잣대는 나의 신념이나 인생관이고 그 기준에 맞추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그 판단에 따라 나는 한없이 너그러워져 무한한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한없이 냉랭해지거나 불같이 타올라 공격하기도 한다. 이 옳고 그름에 대한 나의 집착은 나를 떳떳하고 강하게도 하지만, 약하고 치명적인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11)하고 외쳐대는 더러운 영들을 당장 제압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기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 말이 너에게 가당치 않으니 당장 입을 다물라고 호통하지 않으시는 예수. 다른 이들에게만 그 말을 알리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에 대한 적확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는 말씀에서 놓치고 싶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 역시(혹은 그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으로서 나보다 못한 ('너'를 '물고기' 수준으로 대하는) 너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동일하고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은 '존중'이 결여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는 '낚음'의 첫번째 대상이어야 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복음 선포의 제1순위는 바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