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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9장 (22)
깊이에의 강요

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방금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제자들은 하늘나라의 마음가짐을 가지기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제자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눈에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도 세상의 이치만 있을 뿐 하늘나라의 방식은 없습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내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이웃의 가난과 아픔, 행복이 '나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 말에 틀..
이번주는 사순 제2주일로 루카복음 9,28ㄴ-36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한 베드로에게 갑자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습니다. 구름이 덮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베드로는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체험처럼) 저희 이모는 절에 다니시다가 성당에 다니신지 이제 십년이 좀 넘으셨고 편찮으신지 좀 오래 되셨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척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다니던 절도 그만두고 성당에 다녔는데 아직까지 아프냐?"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오라버니,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하느님을 믿었는데도 아직 아프다.'와 '하느님 덕분에 아직 살아있다.'..
친구들,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지금이 교회 달력으로 무슨 시기인지 알아요? 사순시기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잘 따라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하느님 말씀에 기울이며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시기예요. 사순시기가 되면 제대는 뉘우침을 나타내는 보라색으로 변해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어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라는 제자예요.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셨어요. 우리들은 이 장면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라고 말해요. 조금 있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돌아가시지만, 곧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신..
오늘 복음은 ‘큰 사람이냐’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제자들은 서로 상대방보다 큰 사람이길 원했나보다. 세상의 기준처럼 권력과 재물을 손에 쥐고 영향력을 많이 행사할 수 있고, 조직 안에서 대표성을 띠며 높고 드러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당신 ‘곁’에 세우신 다음 ‘큰 사람’의 조건은 이 어린이를 당신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가진 힘이나 끼치는 영향력으로 크기를 가늠하지 않고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고 당신과 하느님까지 연결하며 제자들을 놀라게 한다. 이 작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을,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며, 실은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남의 십자가 말고 내 십자가. 남 탓 말고 내 탓. 남의 것 말고 내 것. 남의 인생 말고 내 인생.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당신 따른다고 세례 받고 성당 다니는 우리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이거다 싶습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내가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왜 나보다 작은 니가 쥐고 흔드느냐.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하는데 왜 나보다 작은 니가 나를 방해하느냐. 더 큰 내가 진리를 알려주겠다는데 별것 아닌 니가 왜 나서냐. 결국 이런 문제지요. 내가 더 크다고 생각하니 나는 괜찮고 너는 안되는 거고, 나는 정당하고 너는 문제가 있는 거고, 나는 사정이 있는 거고 너는 생각이 없는 거고...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주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도 그렇습니다. 좋은 길을 알려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고집이냐, 나는 과묵한 거고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