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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9장 (22)
깊이에의 강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나를 버리지 못하면 내 몸이 버거워 십자가를 지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한동안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따랐던 때문인지,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던 바오로 사도의 삶과 나의 삶을 생각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에 대한 확신을 모조리 내려 놓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만을 가져야 했던 바오로. 지금 나는 십자가를 지느라 숨이 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노력했던 나’를 버리지 못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니 정작 ‘나의 십자가’를 질 힘은 모두 소진된 건 아닐까. 옳은 것을 하자 싶었지..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카 9,47)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논쟁에서 예수는 그 조건을 '어린이를 받아들임'으로 제시한다. 사람이 가진 힘이나 끼치는 영향력으로 크기를 가늠하지 않고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고 당신과 하느님까지 연결시킨다. 나는 좁지만 우리는 넓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림과 십자가를 얻었는데 자꾸만 따름의 의미는 잊고 버림과 십자가만 생각하며 산다. 따름에 의미를 더 두면 버림과 십자가는 장애물 달리기의 허들 같은 것인데...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게 된 제자들. 하지만 예수님은 시비를 가려주시진 않고 당시 하나의 인간으로 헤아려지지도 않던 어린이를 ‘당신 곁’에 세우신 후 너희 중(네가 어떤 공동체에 있든)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 하신다. 이 제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모자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도 더 커지길 원했나 보다. 이제 겨우 유명세를 누리기 되었는데 스승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 자신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마귀를 쫓아내는 좋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못하게 막았다. 험한 세상을 각박하게 살다보면 안전하고 싶거나 내 세력을 더 확장하고 싶어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 헤로데는 요한의 목만 베면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죄책감은 제거되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원인이 정의를 말한 요한이 아니라 정의에 반하여 행동한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올해는 주일학교가 개학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 9월이 반 넘게 지나가고 있어요. 아쉽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교회에서는 9월을 무슨 달로 기념하는지 아는 친구? 순교자 성월. 특별히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교 순교자들 대축일’이예요. ‘순교’라는 말 다들 들어봤지요? 순교란, 신앙을 증언하려고 목숨을 바치는 일을 말해요. 그렇다면 순교자는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을 뜻하지요.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martus)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해요. 지금도 세상에는 예수님과 신앙..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이 구절을 되뇌어본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도 그냥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마음에 되새겨본다. 기도가 나를 변화시키기는 바라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소원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속내와 다른 경우도 많지만, 두려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기도대로 내가 그분께로 더 나아가고 그분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변화되길 바란다. 그만큼 진실한 기도, 그만큼 투명한 기도, 그만큼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종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기도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사마리아인들의 마을로 들어서면 곧장 쉽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들이 맞아들이지 않았고 하늘에서 불이라도 내려 그들을 응징하려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예수님은 돌아돌아 다른 마을로 가셨다. 내가 생각한 바르고 곧은 길이, 제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 뿐인 그 길은 아니었을까. 빠르고 정확한 길이 바르고 곧은 길이라 여기며, 그 길만이 옳다 고집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 목표를 향해 가는 길 중에서 내가 '곧은 길'이라고 생각한 길을 고집하며 그 길을 걷는데 굽은 길로 돌아돌아 가시는 예수가 저만치서 걷고 계신다. 나는 곧은 길을 가려는데 예수는 굽은 길을 가신다면. 주여, 제가 가야할 길은 곧은 길도 굽은 길도 아니고, 당신과 함께 걷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