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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2 (9)
깊이에의 강요
별 키우기 문정희 나만의 별 하나를 키우고 싶다 밤마다 홀로 기대고 울 수 있는 별 내 가슴속 가장 깊은 벼랑에 매달아두고 싶다 사시사철 눈부시게 파득이게 하고 싶다 울지 마라, 바람 부는 날도 별이 떠 있으면 슬픔도 향기롭다 + 사랑으로 오신 아기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마태 2,9) 올해는 성탄을 기다리며 오래도록 ‘별’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분이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 빛나고,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 앞서 가며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끌고, 그분이 있는 곳 위에 이르러서는 지체 없이 멈춘 별. 아기 예수 앞에 고요히 머물며, 우리 모두 홀로 빛나지 않고, 사람들과 나 자신 모두가 그분을 향하도록 나아가..
첫눈이 오길래 얼른 언니 수녀님한테 영상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흔쾌이 찍어 보내준 영상들을 하나로 묶어 음악을 깔았다. 1:30내로 해야해서 음악도 짤리고 영상도 다 넣진 못했지만 겨울이 가기 전까지 틈틈이 봐야겠다. 눈이 오면 괜히 본원이 그립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루카 1,46-47) 워크숍 중에 이 꽃을 보고 오늘 말씀을 떠올렸었다. '영혼'이 찬송하고 '마음'이 기뻐 뛰는 삶. 평생을 한곳에 머물며 소리 없이 피고 지지만 찬송하고 기뻐 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노래를 불러야만 찬송인 것이 아니고, 소리 치며 두 발로 달려야만 기뻐 뛰는 것이 아니니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물론 있지만 세상과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응답하며 지금 여기에 머무는 내 삶도 분명 그렇다 싶었다. 찬송과 기쁨은 영혼과 마음의 일.
곰곰이 생각하였다.(28절)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복음을 묵상하다가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사의 말 말고, 성모님의 대답(반응)만 따로 떼어서 읽고 또 읽어봤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이런 태도로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꼭 두렵고 떨리는 중대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내키지 않아 한마디 말도 하고 싶지 않다거나 한사코 미루고만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경우에 난,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 지금도 이후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나아가 사람들의 반응까지 염려하다가 그 일이 이루어져야하는 진짜 이유는 외면하곤 한다...
세미나를 왔고 오랜 만에 수녀님들과 우리 회의 특은에 대해, 세상과 수도생활에 대해 묵상하고 나눔도 했다. 첫시간에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성소를 떠올려야 했는데 나는 내가 꿈을 통해 비로소 성소를 깨달았던 때를 기억해냈다. 그때의 난, 밖에서 들려오는 여러 부르심에 흔들리긴 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이 없으니 주위만 맴돌며 응답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연이어 꾼 꿈을 통해 ‘내가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후 수녀원에 들어왔다. 하느님의 뜻이 내 뜻과 같음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었고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내 수도 여정에서 첫번째 서원을 하며 고른 성경 말씀은 ‘원의를 일으키시는 분도 실천케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필리 2,13 200..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요한 5,35) 등불은 '타오르며' 빛을 낸다. 빛을 내려면 타올라야 하고, 타오르려면 불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등불이 되는 일은 결국 남김 없이 나를 내어 놓아야 하는 일이다. 뜨거운 불을 견디고 타들어가고 녹아 내려,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까지를 다 겪는 일이다. 혼자서 빛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일이기에. 오늘은 요한의 삶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겠다. 빛나려는 마음보다 빛을 내는 마음으로, 빛나려는 마음보다 타오르려는 마음으로.
정세랑 미니픽션. 안온북스. 책을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시간을 꽤 길게 보냈다. 얼어붙은 강처럼, 재만 남은 모닥불처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던 시간. 그리고 조금씩 나를 일으키던 것들. 느닷 없는 꿈, 안부를 묻는 문자, 낙엽은 떨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바스러진다던 누군가의 쓸쓸한 말, 간절하게 기도가 필요한 친구, 말씀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껍질을 벗겨야 드러나던 보얀 수세미, 내가 힘들 때도 나에게 달려와 안기던 아이, 계단을 내려오며 내게 의지하던 할머니의 손, 대림환… 이 책도 어쩌면 그런 것들을 모은 책이었다. 어떤 순간, 누군가, 무언가를 위해 선물처럼 마련한 이야기들. 를 읽을 즈음 나도 오랜 만에,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동의 없이 내 방이 옮겨지는 꿈을 꿨다. 수녀원에 들어오니 갑자기 나의 모든 물건들이 다른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옮겨져서 막상 들어가보면 예전의 방과 똑같지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이 달랐다. 다른 방향으로 걷고, 다른 층으로 올라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여전한 내 방이 나왔다. 볼멘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꿈에서조차 서운한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며칠 전부터 온종일 꿈을 곱씹었다. 처음엔 꿈에서조차 말을 끝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서운함이 컸는데, 꿈을 곱씹을수록 이제는 다른 길을 가야 내 방, 여전히 내 방인 곳에 도달한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늘 가던 길이 이제는 내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옮겨진 방은 3층이었는데, 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방향을 틀고 계단을 올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