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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1 (8)
깊이에의 강요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6) 상대를 속여 가며 물건을 파는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을, 자기 자신마저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행위들이 성전을 성전이지 못하게, 성전을 '기도의 집'이 될 수 없도록 만든다. 나의 게으름, 부주의, 무관심, 이기심, 미움, 조급함... 오늘은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내 마음속에 온갖 언어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괴로워 성체 앞에 앉았는데, 소란하기만 하고 좀체 가라앉지 않던 것들이 겨우 잠잠해지고 나니 그제야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곳을......’ 예수님 목소리 덕에 내가..
매주 첫영성체 부모 교리 시간에 를 강의한다. 강의로는 처음이라 관련 자료들을 읽고 공부하고 정리해서 키노트 작업을 하는 것도 좀 벅찬 일인데 매주 강의를 해야한다는 건 더 부담스러운 일. 근데 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세 가정 뿐이라 엄마 세 명에게 강의를 한다는 것. 교황님 글이 무척 좋은 내용이긴 하지만 내용이 깊어서 엄마들이 직장 다니고 집안일도 하면서 여유 있게 번역문을 매주 읽는 것이 쉽지 않을테고(예비자 엄마도 있음), 강의 내용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밌는 얘기일 리가 없으니 하는 나도 어렵지만 듣는 엄마들에게는 더 재미 없고 힘든 일일까봐(그래서 더 노력하긴 하지만) 매주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한 분이 빠지기라도 하면… 지난 주엔 다들 조금씩 늦으셔서 무안해하지 말라며 꺼낸 이..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나는 호기심으로 계산기를 분해해 본다던가 만년필을 해체(?)해서 깨끗하게 씻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류의 인간은 절대! 아니다. 계산기는 건전지만 갈아끼울 정도면 넉넉하고 그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만년필도 잉크 색이 이상하게 섞이지 않을 정도로만 씻은 후 맘에 드는 색깔의 잉크를 채우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수녀원에서 사는 이상,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선풍기를 제대로 분해해서 꼼꼼하게 씻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드라이버를 들고 나사를 풀어 덮개며 날개며 조임부품 같은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순서대로 늘어놓고 말려야 한다. 선풍기가 여러 대인데다 색깔, 부품, 조립 방식도 다르니 나사 하나도 빠..
프랑수아 보봉 지음. 김선용 옮김. 비아. 드디어 다 읽었다. 내용도 쉽지 않았고 아무리 한글이라고 해도 개신교와 가톨릭의 언어는 차이가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인간의 언어를 걷어내고 ‘예수’를 따라가보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대부분이 출판사 책소개였다. 그래… 리뷰 남기는 것이 쉽지 않은 책이긴 하다. 이 책을 읽는 독서모임의 제목이 ‘빡센-독회’라는 건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각설하고, 이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예수의 마지막 날들을 따라가보는 자신만의 이유를 예수 안에서 찾아야겠지. 분도소책 시리즈 중에도 비슷한 제목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읽었던가 가물가물하다. 이 책 덕에 영적 독서용으로 골라둔 여러 책들 중에서 바로 다음에 읽어야..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dailyreading 며칠 전 예비자 성지 순례로 성모당을 갔다가 이 표지판을 봤다. 그 길을 걷던 나는, 우리는 그 순간이 행복했기에 이 표지판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좀 더 걷다가 생각했다. 내 마음이 그리 행복하지 않을 때도 이 길이 ‘행복의 길’이 될까, 함께 걷는 이들이 힘든 순간을 겪는 중이라면 나 혼자 행복하다고 해서 이 길이 ‘행복의 길’이 될 수 있을까. 표지판은 표지판일 뿐 잘 보이도록 둔다고 진짜 행복의 길이 되는 것이 아니듯 하느님 나라도 잘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하고, 나 홀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너희)가 어우러져 하느님 나라를 살..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 2,16)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면 돈을 낸 만큼 기도의 응답을 요구하게 되고, 들인 공덕보다 더 많이 얻어 가길 바라게 되고, 기도를 내가 원하는 은총을 사기 위한 지불 방식 정도로 여기게 된다. 그러니 치워야 한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신앙 장사치로 살아가지 말 것!
홍정수 글. 부키. MZ 세대에 관한 MZ 세대의 목소리. 초반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내용이어서 잠시 멈출까 고민했었는데, 읽을수록 읽고 싶어졌다. 뒤로 갈수록 내가 sns에서 보는 멋진 트친들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보이지 않았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관계가 생각났고, 우리가 배울 점도 나눌 점도 얼마나 많은지 기억났다. 읽기를 참 잘했구나 싶고, 모임 가는 날 본원 도서관에 기증해야겠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내 편에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읽어본 책들은 대부분 윗세대가 관찰하고 터득한(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었다. 의도하진 않았다 해도 ‘판단’이 포함된 책이었고 알려주려는 의도에 비해 ‘가르치는’ 책이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또 알아간다. p.35 "누군가는 요..
양기석 글. 바오로딸.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이신 양기석 신부님의 글. 의 불가타 버전이라고나 할까. 생태 환경 문제에 아직 생소한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안내서 정도인데, 조목조목 잘 정리되어 있다. ‘시작’으로 좋은 책. 관련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생태 신학 관련 책으로는 가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것. p.26 "흔히들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합니다. 어떤 제한도 없이 쓰고 버리는 삶이 행복한 삶인 양, 소비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복까지 위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심각한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인류에게 생존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p.126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종말의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