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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한 여자 본문

雜食性 人間

한 여자

하나 뿐인 마음 2022. 11. 10. 11:46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나는 호기심으로 계산기를 분해해 본다던가 만년필을 해체(?)해서 깨끗하게 씻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류의 인간은 절대! 아니다. 계산기는 건전지만 갈아끼울 정도면 넉넉하고 그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만년필도 잉크 색이 이상하게 섞이지 않을 정도로만 씻은 후 맘에 드는 색깔의 잉크를 채우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수녀원에서 사는 이상,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선풍기를 제대로 분해해서 꼼꼼하게 씻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드라이버를 들고 나사를 풀어 덮개며 날개며 조임부품 같은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순서대로 늘어놓고 말려야 한다. 선풍기가 여러 대인데다 색깔, 부품, 조립 방식도 다르니 나사 하나도 빠지지 않게 신경 써서 순서대로 놓아야 한다. 선풍기라는 기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해마다 반복해서 부품을 분리, 조립하다보면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날개가 한쪽으로 돌면서도 풀리지 않으려면 조임나사들의 방향은 서로 반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 잠금 방향이 시계 방향이 아닌 나사도 있다는 것, 덮개를 서로 잘 붙으려면 나사로 조이기 전에 아래위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 힘을 줘서 끼우기보다 순서가 중요한 것도 있고 불안할 만큼 힘을 줘야하는 것도 있다는 것, 높이 조절을 위해서는 다른 부분을 열어 나사를 조여야 한다는 것 등.

좀 우습지만, <한 여자>을 읽으며 선풍기를 분리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생각했다. 어머니의 삶을 정성껏 분해해서 풀거나 조이는 방향을 받아들이고, 고정시키기 전에 조여야 하는 것이나 조이기 위해 먼저 맞춰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동력이 방향이 되고 그 방향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바람을 맞으며’ 이해하게 되는 과정. 선풍기가 있고, 선풍기의 날개가 돌고, 날개가 바람을 일으키고, 내게로 바람이 불어 오고, 땀을 식히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냄새를 날려보내고, 내 주위의 공기를 바꾸고…


"나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확신했다. 또한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자와 우유를 팔아 낸 덕분에 내가 대형 강의실에 앉아 플라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그 부당함에 대해서도."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 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뻗대고 있고, 어머니에 대해 순수하게 감정적인 이미지들을, 온기 혹은 눈물을, 의미 부여 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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