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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1 (11)
깊이에의 강요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루카 10,1) 오늘은 복음을 읽자마자 이 첫구절에서 멈췄다.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 지명 받은 이들이라고 해서 저절로 그 삶이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부쩍 하게 된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고 이 삶을 시작했지만 그 사실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삶은 아니다. 살면 살수록 그렇다. 아무리 선명한 거울이라도 틈틈이 닦아 놓지 않으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나를 비추지 않는 것처럼, 너무나 읽고 싶었던 책을 구했다 해도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어내지 않으면 그 책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거울을 가진 ..
이번 주 복음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35-36절)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지요? “예.”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행복합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돌아와서 깨어 있는 종들을 보게 되면 ‘종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종들이 행복하다니요. 과연 그럴까요? 주인이 돌아와 깨어 있는 종을 보았는데, 주인이 아니라 종이 왜 행복할까요? 이 이유는 다음 장면이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
○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 90년 전, 손수 이 땅에 성전을 세우시고 저희를 불러 모으시어 이끄시고 보살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이제 저희는 본당 설정 90주년을 준비하며 아버지의 뜻에 맞갖은 00성당 공동체로 거듭나고자 하오니 자신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성찰할 수 있는 지혜와 새로운 변화로의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용기와 모든 일에 있어 당신께 의탁할 수 있는 겸손을 주소서. ○ 사제는 공동체를 받들며 신자들의 삶을 거룩하게 이끌도록 하시고,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내게 하시며, 수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낮은 곳에서 봉사하며 거룩함 안에 머물게 하시어 ● 진실한 사랑으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웃을 보듬는 나눔의 공동체,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깨끗..
김훈. 문학동네.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네가 스스로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터이므로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무엇이 정말 옳은 일인지, 무엇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우리는 과연 알 수 있을까. 알게 되었다 해도 그것이 과연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장 하나를 건지긴 했지만 사실 가장 마음에 많이 남아 있는 건,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는 문장이다. 안중근은 소설에서 거듭해서 생각하고 수도 없이 판단하고 수시로 판단했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문장은 반복해서 나왔다. 치열한 심사숙고였어도 말이 되어 드러나는 건 일부일 뿐. 말이 되지 못한 다짐과 숙고와 짐작들로 우리네 내면이 채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단하게, 속속들이.....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마르 3,5) 아픈 사람이 있었고, 예수께서 먼저 그를 불러내시고, 손을 뻗을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그가 스스로 손을 뻗어, 다시 나았다. 당신을 고발하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기 위해 “손을 뻗어라” 말씀하시는 예수. 두렵고 떨리지만 자신을 둘러싼 악의적 분위기를 이겨내고 결국 예수님께로 손을 뻗은 사람. 율법과 관습을 뛰어 넘어 인간을 보듬으시는 예수. 아픔과 두려움을 뛰어 넘어 예수께로 가는 인간. 이것은 기도이다. … 오전에 마무리했던 묵상이 오후에 다시 이어졌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구원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청하는 것이 기도..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마르 1,45) 첫마음은 왜 이리도 잘 잊힐까… 첫마음이 잘 유지되면 좋겠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무릎까지 꿇어가며 도움을 청할 땐 스승께서 하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40절), 바로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겠지. 가능성에 대고 빌었지만 나의 부주의가 다음 가능성을 막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일단 나의 원의가 이루어지고 나면 … 흩날리던 눈송이처럼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나의 다짐과 기도들은 얼마나 많았나. 선의(예수님의 치유를 ‘선의’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볍..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32-34절) 이번 주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고 두 번(31절. 33절)이나 말합니다. 그런 요한이 복음의 끝에서는 ‘과연 나는 보았다’(34절)고 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요한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요한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요.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으로 복음을 묵상하다 떠오른 것은 말없이 물속에서 머리를 숙였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내려..
이번 성탄은 대림절 시작때부터 별을 떠올렸다. 덕분에 어떻게든 그 별을 따라가 보려고 애쓴 대림시기를 보냈다. 별. 그분의 별. 공현 대축일 복음을 읽으며 다시 별을 생각한다. 동방박사처럼 별을 보고 따라나서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별이 되어야 함을 받아들이며... 나는 그분이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 빛나는 별, '그분의 별'(2절)이어야 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그분께 경배(2절)'하도록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며,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그분을 향해 '앞서가야'(9절)' 하고, 앞서가며 길을 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을 또한 받아들여야 하며, 열심히 그 길을 가는 중이었다 해도 그분이 있는 곳 위에 이르러서는(9절) 지체 없이 나의 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