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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2/12 (2)
깊이에의 강요
여전해야할까
이 계절의 끝에 만난 라일락의 날개. 피정 동안 산책하면서 좋아하던 나무들을 찾아갔다. 여러 목련 중에 하나의 목련, 여러 라일락 중에 하나의 라일락. 피정집 주위를 돌며 산책할 때 눈을 마주치곤 했던 라일락을 보러 갔더니 이렇게 투명한 날개를 단 씨앗 몇을 마지막까지 붙들어주고 있었다. 보라색 꽃들과 아찔하던 향기가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나무를 좋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을까. 염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도 그럴 수 있을까. 상대를 쉽고 가볍게 여기는 태도 앞에서 나는 여전해야할까. 라일락을 대하듯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미 그러고 있어서일까.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수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 식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책을 대하는 태도는 말에 뭣하겠는가. 지난 시간을 알지 못해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알고, 찢어진 것이나 낙서, 얼룩이 묻은 것을 흠이라 단정하지 않고, 새것과 번쩍이는 것만을 좋다 말하지 않으며 시간의 흔적마저 존중할 줄 아는, 비싸고 유명한 것들만 값지게 여기고 지켜주려 하지 않는 태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책수선 작업을 지켜봤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다친 책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다시 되찾아가는 걸 지켜보며 내 마음이 그렇게 뛰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언가를 보존해주고 되찾아주고 더 오래도록 살아남도록 튼튼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