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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본문
재영 책수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 식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책을 대하는 태도는 말에 뭣하겠는가. 지난 시간을 알지 못해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알고, 찢어진 것이나 낙서, 얼룩이 묻은 것을 흠이라 단정하지 않고, 새것과 번쩍이는 것만을 좋다 말하지 않으며 시간의 흔적마저 존중할 줄 아는, 비싸고 유명한 것들만 값지게 여기고 지켜주려 하지 않는 태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책수선 작업을 지켜봤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다친 책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다시 되찾아가는 걸 지켜보며 내 마음이 그렇게 뛰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언가를 보존해주고 되찾아주고 더 오래도록 살아남도록 튼튼하게 해주는 책 수선가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삶이 책뿐 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를 조금씩 밝혀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p.96
"책 수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라 사람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옷 수선, 구두 수선, 시계 수리와 같이 수선과 수리라는 단어가 주는 일상적인 친숙함이 이 일에도 깃들기를, 또 망가진 책을 고쳐가며 읽는 일이 사람들에게 보다 일상적인 경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p.174
"망가진 책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지난 파손의 형태들을 관찰하여 어떤 수선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그렇게 무너져가는 책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일. 새삼스럽지만 책 수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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