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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2 (9)
깊이에의 강요
한스 큉 지음.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조금 (많이?) 기대하고 읽었던 책이다. 물론 숙고할 것들도 많이 얻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허허…하면서 수도 없이 웃었다. 번역이 이렇게도 ‘사람’을 번역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마음에 새길 문장도, 숙고할 문장도 많았지만 답답함이 더 컸네, 지금 돌아보니… 너무 자신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 지척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안 되겠다…가 결론이고 이 책의 교훈이다. 알면 좀 더 낫겠다고 늘 생각하는 편이지만, 송 신부님의 책도 그렇고 한스 신부님 책도 그렇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든 진짜 중요한 것은 시대의 특성에 따라 외면 당한다 해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내겐, 예수가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 그건 그렇고… 나의 글은 나의 무엇을 가장 잘 드러낼까. 혹 ..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마르 9,42-43)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말씀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하시며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먼저 꺼내신 후 '나'를 죄짓게 하는 경우는 세 가지나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모두 '나'이다.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눈.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손,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발,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눈. 차라리 잘라 버리는 것이, 빼 던져 버리는 것이 낫다 하시며 단호하게 이르신다, 내가 스스로 죄짓지 않도록. 우..
송봉모 지음. 바오로딸. 함께 읽었던 한스 큉 책과는 달리 자상하고 따뜻한 책. 이제 이 요한 복음 시리즈도 끝나간다. 몇년에 걸쳐 꾸준히 책을 내어 주신 송봉모 신부님 덕에 나도 요한 복음을 놓지 않고 잘 따라 걸었다. 송신부님은 마지막까지 힘내서 잘 마무리해주시길… "은총으로 살아가려면 자기 인생 이야기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그늘진 면을 인정할 때 내가 누구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 브레넌 매닝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6,45) 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은 정말 인간을 잘 이해하고 계시는구나 싶습니다. 이번 주 복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정곡을 찌르는 말씀은, 너무나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치게 하지는 않습니다. 단죄가 아니라 구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구원 의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저 사람이 속은 안 그런데 표현만 저렇게 함부로 해.”라고 두둔하거나 “내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라고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속마음은 너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데 표현만 공격적..
황정은 에세이. 창비. 화가 나면 잘 내뱉는 혼잣말이 있다. ‘더 이상 애쓰지 않을 거야.’ 뭘 그리 바등바등 애쓰며 사나 싶다가도, 애쓰는 마음이 없다면 그대로 말라 바스라지지 않을까, 우리 세상이… 한다. 함께 살려면 마지막까지 애써보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또 생각한다. 수천 번 수만 번 ‘더 이상 애쓰지 않을 거야.’를 혼자 외친다 해도 결국 다시 한 번, 마지막까지 애써보는 삶을 끝까지 살아가야겠다. p.20 "타인의 애쓰는 삶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p.38 "남이 고통을 겪을까 염려하는 마음. 그게 이미 있다고 믿는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각자의 외부에서 발생한 거대한 고통과 이미 접촉한 적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고도 경이로운 공동의 경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마르 8,15-16)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상황도 잘 판단했다고 여겼겠지만 실은 자신들의 빵에 대한 욕구를,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을 뿐이다. 더불어 실은 잘 알아듣지 못했음을, 자신들의 생각에만 파묻혀 있었음도 드러냈다. 내 말도 그렇다. 잘 판단하고 재치 있게 말했다 싶어도 드러나는 건 그게 아닐 수 있다. 듣고 있었기에 ‘들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생각에만 집중했을 수도 있고, 수차례에 걸쳐 거듭 생각했으니 정확하게 판단했다 확신이 들어도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말을 삼가고 또 삼가고…
이 계절의 끝에 만난 라일락의 날개. 피정 동안 산책하면서 좋아하던 나무들을 찾아갔다. 여러 목련 중에 하나의 목련, 여러 라일락 중에 하나의 라일락. 피정집 주위를 돌며 산책할 때 눈을 마주치곤 했던 라일락을 보러 갔더니 이렇게 투명한 날개를 단 씨앗 몇을 마지막까지 붙들어주고 있었다. 보라색 꽃들과 아찔하던 향기가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나무를 좋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을까. 염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도 그럴 수 있을까. 상대를 쉽고 가볍게 여기는 태도 앞에서 나는 여전해야할까. 라일락을 대하듯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미 그러고 있어서일까.
재영 책수선 지음. 위즈덤하우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동물을 대하는 태도, 식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책을 대하는 태도는 말에 뭣하겠는가. 지난 시간을 알지 못해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다그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알고, 찢어진 것이나 낙서, 얼룩이 묻은 것을 흠이라 단정하지 않고, 새것과 번쩍이는 것만을 좋다 말하지 않으며 시간의 흔적마저 존중할 줄 아는, 비싸고 유명한 것들만 값지게 여기고 지켜주려 하지 않는 태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책수선 작업을 지켜봤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다친 책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다시 되찾아가는 걸 지켜보며 내 마음이 그렇게 뛰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언가를 보존해주고 되찾아주고 더 오래도록 살아남도록 튼튼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