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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3 (11)
깊이에의 강요
다해 사순 제5주일 요한 8,1-11 예수님은 여인을 끌고 왔던 이들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모두 의도적인 질문이지요.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물으심으로써, 여인에게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당신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비추어, 우리는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간혹 자신의 기준에서 잘못했다고 판단된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해도, 내게 그 사람을 마음껏 조롱하고 가해..
은희경 소설집. 창비. 오디오북으로 다시 ‘들은’ 책이다. 대학생 때 로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시작했는데, 꼭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게 은희경 작가의 책은 어른의 책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변함 없는 팬이다, 조금 더 어른이기 위해서라도. 사람이란 존재는 에덴에서의 최초 인간처럼 조금씩 자신을 가려가며, 두려워서 숨기도 하며, 넘치는 것을 바라고 탐하며, 알면서도 남을 탓하며 살아간다. 나를 가장 믿어주는 사람을 배반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탓하며… 은희경 작가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태연자약하게 드러낸다. 호들갑도 없이, 굳이 숨기지도 않는, 그의 세계가 좋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루카 18,11-12) 설마 이 말씀이 단식과 십일조를 폄하하시기 위함이겠나. 강도나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를 편드시는 것이겠나. 다만 열심히 단식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한 결과가 남을 판단, 비난하는 거라면 오히려 안하니만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겠나. 뭘 했고 안 했고 보다, 하느님 앞에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자신을 낮추는 ‘솔직?하고 투명한 내적 상태!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내 영혼에 더 이로운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나. 우리가 단식하고..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19) #dailyreading 순서에 대해 생각한다, 스스로 지키고/ 그렇게 가르치는 이. 가르치는 대로 지키며 사는 스승도 드문 세상이지만… 적어도 먼저 스스로 지키며 사는 사람, 그런 후에,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르쳐야 할 때가 오면 삶 자체가 모범이 되는 사람. 그러니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자.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마태 18,32-33) 탕감 받은 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도 있고 용서 받은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이후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큰 일을 겪고도 더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 비뚤어질 특권이라도 받은 것처럼 삶을 망가뜨리며 사는 사람… 운이 좋았다 생각하고 거기서 끝날 수도 있고 감사를 되새기며 은총을 자신 안에서 길어올리며 살 수도 있다. 다 잊고 사는가, 은총 속에 머무는가.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루카 4,27) #dailyreading 나는 저 시대에 나아만만 깨끗해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아직 젊은 시몬이 먼저 하늘로 떠난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진을 치듯 앉아 있어도, 묵주를 잡고 공원을 수바퀴 돌아도, 복음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어도 그렇다. 다만 내가 얼마나 ‘그래야만 한다’고 고집하며 살았는지를 조금 깨달을 뿐이다.
최승자 에세이. 난다. 죽음을 생각했다. 한 개인의 죽음, 어떤 세대의 죽음, 시대 사조(思潮)의 죽음, 언어의 죽음…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시작. 전혀 다른 출발. 그리고 내겐 첫 죽음의 경험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시간과 경험상으로는 두 번째이나 유일하기에 여전히 첫 죽음의 경험인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시인과는 달리 이 죽음을 겪으며 오히려 나는, 습관처럼 그저 몸에 밴 신앙의 껍질을 겨우 한 겹 벗어버렸다. 사람이, 의식이 없는 편에 가까울 그 순간, 모든 것과 이별하는 그 강제적 순간에 그렇게 차분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자신이 곧 도달하게 될 하늘 나라에 대한 명료한 확신 하나만 남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어린 아이가 그동안 듣고 꿈꾸던 하늘 나라는 동화책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