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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12/31 (2)
깊이에의 강요
송년 미사를 마치고 들어와 잠깐 한해를 돌아보다가 이 사진을 본다. 하루 종일 성탄 준비하느라 성당에서 동동거리다가 저녁기도 시간에 맞춰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 잠깐 찍은 사진이다. 보나마나 성야나 대축일 당일엔 막상 초 깎고 제의실 치우느라 구유 앞에 고요히 머물 시간이 없을테니 피곤한 몸도 좀 쉴겸 미리 예수님을 좀 보자 싶었다. 아무도 없는 성당. 퇴근하면서 켜두는 십자가 등을 미처 끄지 않고 구유의 반짝이를 켠 후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한동안 구유의 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십자가 예수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순결하고 가난한 아기로 태어난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막 태어난 아기 예수가 세상에서의 삶을 온전히 완수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올려다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의 시작들을 생각..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4-5) #daiyreading 큰 축일을 지내고 나면 마음은 접어둬도 몸은 일단 녹초가 된다. 화려한 장식과 다소 요란한 음악, 들뜬 사람들 무리를 뚫고 출퇴근을 하다가, 모처럼 잠잠해진 평일 저녁 일부러 퇴근길을 좀 둘러서 느긋하게 했다. 성탄이 끝나야 내게도 성탄이 온다. 화려하게 장식된 길을 걸어야 성탄이 되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이 길을 걸어보기 전까진 내게 없는 길과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빛 역시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닫지 못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