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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11 (8)
깊이에의 강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19-20) #dailyreading 오늘은 곧바로 그물을 버렸던, 곧바로 그분을 따랐던 제자들을 묵상했다.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어떤 이들은 호수에 어망을 던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적어도 복음만으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았다거나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했다는 정보는 얻을 수 없다. 그저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던 그들을 덜컥 부르셨고 그들은 곧바로 어망을 쥔 손을 빈 손으로, 그물을 손질하던 시간을 빈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빈 손, 빈 시간, 무엇보다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때는 이렇듯 내 편에서, 그게 무엇이든 준비를 갖추었을 ..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루카 21,4) 부자들의 봉헌엔 여태 아무 말 없었던 분이 왜 빈곤한 과부의 봉헌을 보시고 굳이 입을 여셨을까 생각한다. 속좁은 나였다면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은 부자들의 봉헌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았을 텐데, ‘모두’들 ‘조금씩’ 떼내어 준 일에 대해 더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서로를 위해서, 해야하는 말과 삼가해야 하는 말이 있다. 내 분통이 터진다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까발리듯 말해버리면, 내 자존심이 다쳤으니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남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얼마 못 ..
윤성희 지음. 포르체. 책을 읽으며 궁금했었다, 다산이 천주교에 입문하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본래 소양이 천주교 사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일까, 천주교 사상이 그의 소양의 깊은 뿌리가 되었을까. 다산의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예수의 강생(降生)과 이렇게 유사했었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가톨릭 교리인데, 이건 성경 말씀인데 싶었다. 내게도 좋았지만 청년들이나 학생들이 읽으면 더 좋겠구나 싶었던 책. p.5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이 ‘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어떤 상황에서든 세상에 휩쓸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수양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산은 자신뿐만 아니라 두 아들과 제자들, 형과 친구들도 그러하길 바랐..
김초엽 짧은 소설. 마음산책. 조금 긴 문장의 질문들. 혹은 표현된 의문들. "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한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 -"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 18,41) 혼탁한 세상 속에도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선의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후회로 가득 찬 내 안에서 아직 남아 있는 첫 마음과 열의를 아직은 돌아설 수 있을 때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비록 내 삶이, 그의 삶이 까맣게 타고 남은 잿더미 같을지라도 희미하지만 반드시 남아 있을 당신 사랑의 불씨를 찾아내게 하소서. 비록 돌아섰었더라도 다시 한 번 돌아서서 내 안의 당신을, 그 안의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안소근 지음 성서와함께. "무엇이 우리의 희망을 보증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것을 바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있다고 여길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일까요? 객관적 증거라는 것은 어쩌면 결국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라는 것은 믿음이나 희망과 병립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믿음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로마 8,24)라고 말했지요. 결국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미래의 것을 희망하며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언젠가 한동안 지인들에게 ‘왜 믿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다녔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분명하고 선명한 ..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천문장. 굉장히 술술 넘어갔다. 내용 때문이라기보단 문장 때문이겠지만. 직전에 읽은 도 그렇고, 언젠가 읽었던 도 그렇고, 삶이 어찌 이러나 싶었다. 주인공의 삶도, 그 주인공에게서 도저히 떼낼 수 없는 주위 사람의 삶도 어찌 이러나. 타인의 삶을 갉아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괴롭다. 외면하지도 못해 한 쪽 손목을 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만만찮게 힘들다. 그런데도 의외로 소설로 읽는 것은 수월했고 재밌기도 했다. 뭔 아이러니인지… 정말로 이러나 싶어 온전히 소설이길 바라며 읽었지만, 적어도 주인공의 인생에는 ‘선의’와 ‘자각’이 엿보였다. 선의를 간직할 때, 자각하려 노력할 때 적어도 우리는 내 삶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