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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19/09 (6)
깊이에의 강요
“코헬렛은 그 너머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불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약의 신앙인이었던 코헬렛의 겸허함이다.”(안소근 수녀) 이 달엔 이 문장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죽음이 갈라놓은 이별을 생각할 때마다 서둘러 내가 믿는 신이 약속한 부활과 하늘나라가 떠올려 보지만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슬픔을 싹 가시게 해 줄 벅찬 기쁨을 상상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 싶은데, 왜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내 깊은 데까지 들이치는가, 무너질 정도로 내 삶을 흔드는 일들이 생기는가 질문하게 된다. 탓할 만한 잘못이 내게 있었다면 답하기가 쉽지만, 스스로 성실히 걸었다 싶을 땐 쉬이 답이 찾아지지 않아 기도조차 어려워진다. 때가 되어 내리는 ..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루카 7,35) #dailyreading 옳음을 밝히는 일은 옳음을 따르고 실천하는 이들의 몫이다. 지혜를 드러내는 일이 지혜로운 이들의 몫이듯 정의를 드러내는 일은 정의를 따르고 실천하는 이들의 몫. 지혜를 말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아니라.
조남주 지음. 민음사. 묵시록처럼 모든 게 무시무시한 비유 같은 이 책이 적나라한 현실을 한 점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까발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묵시록이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들의 눈을 피해 비유와 상징으로 쓰여졌지만 그 책을 읽는 신자들은 모두가 그 비유를 현실로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비유와 상징들. 게다가 그 비유와 상징들을 모아 이어보면 미사라는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전례인 미사를 드러내는데, 이 책 역시 사하맨션 주민의 입장인 이들은 이 sf소설이 조금도 허구가 아님을 알아들을 수 있다. 더욱 놀라웠던 건 문장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내가 알던 이들의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하나하나, 때론 무리지어. 풍족하게 누리며 생각없이 타인을 짓..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6,26) 오늘은 묵상하는 내내 이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 그다지 좋은 사람이라 스스로 말하긴 어렵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말해준다는 것이 왜 나의 불행이란 말인가.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가능하다면 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다. 요 며칠 너무나 시끄러웠던 청문회를 떠올리며 좋은 사람이라 여겼던 사람이 안겨주는 실망의 크기, 비위가 발각되어도 끝까지 감싸는 맹목적 지지, 떠받들어주는 측근들 사이에서 흐려진 판단...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어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