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 고대그리스어(헬라어)학습
깊이에의 강요
포기가 아니라 내어줌 본문

“고맙습니다.”
미사 반주를 위해 오르간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시던 선배수녀님께서 고개까지 숙이시며 인사를 하셨다. 수녀님의 온유한 웃음은 언제나 좋았지만, 그 웃음 가득 담은 인사는 내 기도마저 풍성하게 해줬다. 그러고보니 피정만 들어오면 오르간으로 일기를 시작하는구나.
작년 연피정에서는 매일 미사 반주를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부담이 없진 않았다. 더 젊은 수녀일 때는 피정 때 반주나 선창이 부담을 넘어서 ’부당‘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분원에서 그때그때 생기는 업무 외의 일들도 내겐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싶기도 하고, 아쉬울 때 보탬이 되는 ’무더울 때 바람’ 정도의 희생 기회가 내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독서를 맡은 동생 수녀님한테 알렐루야는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말해줬다. 중간 부분은 말로 해도 되니 부담 갖지 말라고… 서로 말을 맞추지 않은 채 미사를 했는데 솔로 부분에서 볼륨을 줄이며 자연스럽게 손을 떼려는 찰나 동생 수녀님이 노래를 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반주를 이어갔다. 이렇게나 영혼의 기쁜 손님 같다니… 다음주 미사에는 동기 수녀가 독서를 해야하는데 부탁도 못하고 걱정만 한가득이었지만(불가리아 선교에서 코로나를 호되게 앓은 후에 천식이 생겼다.) 동생 수녀님이 흔쾌히 대신 독서와 알렐루야를 하겠다고 했다.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얼마 전에도 저녁 식사 후 혼자서 야채를 다듬고 있는데 동생 수녀님이 와서 나를 말렸다. 내가 고단할까봐 염려해 주는 것이기도 하겠고, 각자가 아침에 하면 될 일이니 그게 더 공평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도 맘편히 대답했다. 그렇게 각자가 해도 되지만 미리 다듬어서 잘 정리를 해놓으면 아침에 샐러드로 내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고, 그렇게 준비해주고 살피는 일이 ’너희가 잘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좋아서라고… 그러자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의 대답을 마음에 품고 성당에 앉아 있으니 내 마음이 그동안 좀 더 깊어졌구나 싶었다. 솔직히 일처럼 하던 때가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켜서 하는 일이 되었다. 해서 좋고, 하지 못했어도 마음이 부대끼지 않는다. 자유롭다는 말이다.

몇달 만에 다시 찾은 피정집은 나무들이 제법 자라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의 자리를 잘 지켜가며 자란다. 약간의 틈을 두고 적당하게 가지를 뻗으며 한데 살아가는 것이다. 나무의 꼭대기가 서로 닿지 않는 걸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라고 한다는데, 서로 겹치지 않게 자라니 서로 찌르거나 부러지지 않고 또 낮은 부분들도 햇볕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무들은 자기들이 포기하고 사는 게 아니라 내어주며 살아간다고 여기겠구나…
포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살수록 내 시간과 휴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내어주고 나눠주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살다보면 삶에 마음 베이는 일이 왜 없겠냐마는, 그래도 내어주고 나눠주며 살아봐야겠다. “고맙습니다.”하시며 마음 한 켠 환하게 내어주시던 선배 수녀님처럼 말이다.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 (1) | 2024.08.27 |
---|---|
첫 출근 (0) | 2024.08.24 |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0) | 2024.05.18 |
마태 2,16 반대급부가 꼭 필요한 날 (0) | 2023.12.28 |
성호경을 긋듯 오르간을 친다 (2) | 2023.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