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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 하는 일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하나 뿐인 마음 2024. 5. 18. 15:39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굳이 구분짓고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이 옷을 입고 이쯤 살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 좋아하는 것이나 정말 잘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첫 깨달음은 초등학교 5학년 글짓대 대회였다. 전교생이 학년별로 글짓기 대회를 했는데 친한 친구와 나는 편지쓰기 대회에 함께 나가고 싶었다. 당시엔 펜팔 문화가 있기도 했고, 평소 예쁜 편지지를 잔뜩 모아두었다가 방학이 되면 그리운(애써 그리워하며?)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성당 친구나 동네 친구가 아닌 이상 한 달이 넘는 방학 동안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편지라도 써야지만 뭔가 친구의 도리를 다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심지어 마음 맞는 친구를 갖게 된 후로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고 시내에 놀러 나가면서도 만날 때마다 서로 편지를 들이밀었으니, 난 편지라면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대회 며칠 전 조용히 나를 부르신 선생님은 편지쓰기 대회가 아니라 독후감 대회를 나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뭔가를 읽고 그 읽은 것을 조목조목 풀어나가야 하는 글. 형식마저도 자유롭게, 책 이야기를 하는 글. 사전 준비(책 읽기)가 필요한 일인데다 친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독후감 대회에 나갔고 선생님의 예상은 맞았다. 우린 나란히 대상을 탔다. 하긴 친구와 함께 편지를 썼다면, 나는 아마… 선생님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못하게 했다고 생각했고 서운했었다, 그때의 나는.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인간이 되었다.

두 번째 깨달음은 교리교사를 하면서 얻었다. 교리교사 학교의 모든 과정을 이수한 후 희망 학년을 적어내라길래 6학년, 5학년, 4학년을 순서대로 적어냈다. 글도 쓰지 못하고 말도 서툰 아이들을 능숙하게 다룰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방긋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아이들을 대할 생각을 하니 뭔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게 떨어진 학년은 유치부였다. 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속상했는데 나는 그 유치부 교사를 5년이나 했다. 교재도 만들고 교구도 만들어가면서 오로지 그 학년만 담당했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얼마나 잘 키우고 다듬었는지 이제는 안다. 교리를 준비하며 하느님과 예수님 마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했고, 되돌려받지 못하는 사랑을 줄 줄 아는 법을 알려줬고, 단순하면서도 바르게 행동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고, 연약하고 어린 것의 단단함과 바름을 알아보도록 해줬고, 바르고 선함의 힘을 경험토록 해줬고… 나는 말을 알아듣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느님은 내가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가고 말이 아니라 눈을 맞추고 행동에 관심을 기울일 때 하느님을 더 잘 전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후에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지만 여기서 돌아보니 본당 수녀로 살아가는 것 역시 그렇다. 여러 수도회 중에서 우리 수도회를 택한(물론 부르셨던 것이지만)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본당 소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매일 바치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좋기도 했지만 본당 소임이 많지 않다면, 누군가를 매번 새로 만나야 하고 정해진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하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제들과 함께 일을(죄송합니다…) 해야하는 이 버거운 소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겠구나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일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확신했었는데 지금껏 나는 한 번도 다른 소임을 하지 않고 2005년부터 본당 수녀로만 살고 있다. 이제는 하느님 앞에서 인정하기도 한다, 적격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감사드리는 소임이었다고.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밤마다 힘들어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실제로 오랜 시간 그렇게 살기도 했고 그렇게 여겼다.) 어쩌면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잘 해야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삶’이니까. 그리고 마음을 다해 살다보니 심지어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여름 인사이동을 앞두고 들어온 피정이라 그런지 선배 수녀님들을 보면서도, 저녁 산책을 하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자꾸 지난 시간에 감사하게 된다. 바오로가 평생 자신이 잘 한다고 여겼던 일들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의 일만을 했듯, 나도 그렇게 하느님의 일을 하며 내 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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