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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토지 본문
박경리 대하 소설. 마로니에북스.
드디어 다 읽었다. 사람에겐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걸 내내 생각했다. 선악시비를 가리는 것도 부질없다 싶고, 안타깝지 않은 인생이 없었다. 관수 형님이 제일 매력적인 인물이었어.
"강한 놈도 약한 놈도 없어질 때 끝이 나겠지. 지금 당장에는 왜놈이 강한 놈이고 조선은 약한 놈이다."
석이는 어두운 땅을 내려다본다.
"옛날 같았이믄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기고, 오늘
같이 허간가 하는 그 늙은이한테 무릎 끓는 따위의 병신 짓도 아마 안 했을 기다. 우짜믄 니보다 내 편에서 조가 놈 목통을 졸라서 직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밥풀이다."
“…… "
“니는 나보다 나이사 어리지마는 배운 것이 많고 책도 많이 읽었고, 그만큼 생각는 것이 나하고는 다를 기다마는 사람이란 사철 눈 오는 곳에만 있이믄 푸른 풀밭 같은 것은 모리는 벱이고 반대로 푸른 풀 밭에만 살고 있이든 눈에 덮인 곳을 모릴 기다. 어디 사람만 그렇겠나? 만물이 다 그럴 상싶은데.....
양반 조준구나 상민 허상안이가 그 중에서도 중불 나게 나타났다 뿐이제. 저거들만 풀밭에 사는 줄 알고 저거들만 눈구덕에 사는 줄 알고, 그러니 천지가 넓고 사통팔방이라는 것을 모리기는 피장 파장인 기라."
무슨 뜻인지 그런 말을 하고 나서 관수는 껄껄소
리 내어 웃는다.
"양반은 상놈들을 눌러 잡아야 저들의 보신이 되고 양반한테 개처럼 순종하는 놈일수록, 음, 천민이 제같이, 아니 제보다 한층 더 순종하길 바라는 게 이치 아니겄나? 그들의 이치란 말이다. 푸른 풀밭이나 눈 오는 곳이사 하누님 하시기 탓이겄지마는… 사람이 한 일이야 사람의 손으로 뿌사야지.
임금이다 양반이다 상놈이다 천민이다 그거를 하누님이 맨들었나? 사람이 맨든 기라. 사람이 맨든 기문 사람이 부사부리야제. 중불나게 나쁘고 미련한 놈이 전부는 아닌께, 또 없어지는 것도 아니겠고, 그러나 양반도 사람이다. 신선도 아니고 선니도 아니고 똑같이 밥묵고 똥 싸는 사람이다 해얄 기고 백정도 사람이다. 소 돼지가 아니고 똑같이 밥 묵고 똥 싸고 일하는 사람이다! 누구든 똑같이 살 수 있으며 잘하고 잘못하는 것이 지한테 매인 기지 양반이나 백정한테 매인 거는 아니다! 그렇기는 돼야 안하겄나?"
“...... "
"그렇다고 해서 우리 생전에 머가 된다고 생각한 다믄 너무 조급한 짓일 기고오 우리 생전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탈기 가 되니께."
“알았소, 형님."
"기운을 내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