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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에이징 솔로 본문

雜食性 人間

에이징 솔로

하나 뿐인 마음 2023. 8. 8. 14:44

김희경. 동아시아.

 

김희경 작가님의 책은 세번째인데 모두 좋았다. 이번 책은 나이듦, 존엄한 죽음, 자존심과 자존감, 홀로 머물되 함께 살아갈 줄 아는 것… 많은 질문을 던지고 돌아보게 했다. 비혼 여성의 삶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강요된 결속 방식을 허물고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의 '진화' 이야기 같았다고나 할까.

 

수도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수련 기간 동안 많이 들었었다. 내가 서원을 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은 신앙, 기도... 이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기존의 삶의 질서를 포기하고 수녀원에 입회해서 새로운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했던 시간들, 함께 살 줄 알게 된 후에 다시 홀로 서야 하는 서원의 삶, 나를 지우는 것이 공동체 삶이 아니라 하나의 모자이크 작업을 완성하는 작은 조각이지만 나만의 색과 모양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조각들의 어울림이 공동체 삶임을 깨달아가는 지금과 이후의 삶을 돌아보고 그려가며 읽었다. 사실 나야 말로  '홀로이면서 함께' 사는 사람 아닌가. 


p.16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 할 수 있게 된다."

p.43
"대부분 ‘어쩌다 보니’ 비혼이 되었다고 말했다. 별생각 없이 살다 이렇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비혼이 인생을 건 결단이나 비장한 선택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가치관과 자기 삶의 맥락 안에서는 무리 없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는 뜻이다."

p.49
"비혼이 비장한 결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일 뿐이었다 해도 이 선택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부장적 성차별 구조가 존재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위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없거나 적다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굳이 결혼을 배제할 이유가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p.59
"세대 간 차이는 비혼 담론의 변화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은숙 박사가 한국 비혼 담론의 흐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비혼 1세대는 “1970년대 이후 출생하여 민주화운동 속에서 비판적 사회의식을 길러왔고, 가부장제와 소유 중심의 사회로부터 거기를 두고 공동체적 지향으로 살면서 주로 생활정치와 복지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제를 형성”해온 사람들이다.
2015년 이후에는 “미투운동,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이 등장”했고 그 속에서 “비혼을 남성과 가부장제를 타격하는 정치적 행동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탄생했다. 비혼 2세대가 주도하는 이러한 흐름이 등장하면서 비혼의 대중화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p.82
"나의 경우 누구나 겪기 마련인 일시적 외로움을 넘어 뼛속까지 외로움이 사무쳤던 때는 혼자 살 때가 아니라, 대화와 감정의 교감이 막혀버린 사람과 함께 지낼 때였다. 배우자든 연인이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새 서로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이가 된 채 잔해만 남은 관계에 묶여 있을 때였다."

p.87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

p.124
"‘온리 원’이라는 각본에 대한 집착만 털어낸다면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두지 않은 삶은 ‘감정 관계들’로 더욱 풍요로워질지도 모른다."

p.152
"혼자 살아가는 에이징 솔로일수록 의식적으로 친구를 만들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정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다. 우정이 확대되면 신뢰에 근거한 사회적 관계, 즉 사회적 자산이 되고, 사회적 자산 만들기는 솔로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다."

p.160
"같이 어울려 살려면 ‘반응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p.168
"봄봄은 “비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임으로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비는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안전한 관계, 안전한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서로의 꼴을 봐주고 사는 공동체”라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요약했다."

p.169
"폐 끼치고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건 정말 연습이 필요한 일."

 

p.170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훤씬 중요한 거죠. 그런 게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성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니까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받을 줄은 알아야 해요.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군가 손을 내밀고 나를 도와주려 할 때 감사하게 받을 줄 아는 것도 공동체 정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p.171
"혼자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비비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서로 꼴을 봐주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 연습이 필요하다."

p.212
"‘1.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2. 감정을 자제하면서 마음을 열고 솔직한 태도로 의논하고, 3.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고려하여 힘든 결정을 내릴 줄 알고, 4. 민주적으로 결정된 사안을 분노 없이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어야 공동 주거에 적합한 사람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

p.231
"가족에게 폐 끼치는 것도 싫지만 자기를 잃은 채로 살게 될까 봐 무섭다는 게 이들이 안락사 계획을 세워둔 이유였다."

p.231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을 입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아버지의 삶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p.233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태를 존엄이 훼손된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 생리 현상과 위생에 좌우되는, 그렇게 하찮은 가치인가?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중증환자, 노인, 장애인들이 배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에서는 존엄이 다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p.233 ~ p.234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두가 중도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그 중도 장애 안에는 불편한 몸 뿐만 아니라 불편한 머리와 마음,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에 대한 공포의 대안으로 안락사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생 사상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p.234
"영구적 뇌 손상이 확정되고 가족들도 아버지의 의식을 현실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포기할 무렵, 아버지의 두서없는 말과 행동에 깃든 희미한 질서가 눈에 띄었다. 자기 삶의 역사에 대한 일관된 서술은 잃어버렸을지언정 몸에 밴 습관과 특징들은 그대로였다. 아버지답게 끊임없이 사람들의 밥을 챙겼고, 일방적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병실 밖에 호랑이가 있다고 안절부절하는 황당한 걱정에도 자식들에 대한 염려가 묻어났다. 내가 좋아했던 유머 감각, 참기 힘들었던 고집불통은 아버지의 고장 난 뇌가 만들어 낸 기묘한 세계 안에서도 여전했다."

p.235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공동 저자 이지은은 오랫동안 치매 돌봄의 현장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발견을 소개하며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전의 삶의 흔적들을 가진 몸의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몸은 그저 손상된 뇌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p.235 ~ p.236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중에서)"

p.257
"서로서로 견디는 힘만 있으면 다른 건 헤쳐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를 견디지 않고 가능한,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관계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p.262
"저 친구가 나와 다르다는 거를 무심히 보면 되거든요. 그걸 무심히 보면 다툼이 안 일어나요."

p.310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이 행복하려면 다른 이들의 행복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불평등 해소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사회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면모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 사람들의 사고에는 몰입의 대상인 '가족'만 있을 뿐, '나'와 '사회'가 없었다."

p.316
"고백하자면 '홀로이면서 함께'는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인생의 화두다. 온전히 '홀로'도 아니고 늘 ' 함께'도 아닌, '홀로이면서 함께'하기. 단독자로서의 영역을 지키면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이는 삶을 꾸리고 관계를 맺을 때 늘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p.319
"혼자 나이 드는 삶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바라본다면 이 책에서 에이징 솔로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 생애 전환, 친밀한 관계 맺기, 여러 층위의 연결망,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기 등을 다르게 실천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 언제라도 혼자 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친밀한 관계를 다른 관점에서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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