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수도원 안에서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분투하는 이들(RB 1,2)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수도원 안에서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분투하는 이들(RB 1,2)

하나 뿐인 마음 2020. 6. 15. 14:03

미사를 드리고 내려와서 피정자들끼리 아침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에 다시 모여 기도를 드리고 있으면, 이미 아침 기도와 미사까지 끝낸 누군가가(아마도 신부님) 자전거를 타고 수도원을 오가는 게 창문 밖으로 얼핏 보인다. 내리막 방향일 때는 굳이 다리로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 체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체인 감기는 속도만큼 형상도 순식간에 창문 프레임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오르막 방향일 때는 프레임에 들어온 후에 천천히 사라지며 소리에서도 끙끙 애쓰는 노력이 느껴진다. 기도 중이라 창밖을 내다볼 순 없지만 소리 만으로도 지금은 내리막길인지 오르막길인지 알 수 있다. 수련소 때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던 기억이 자꾸만 올라와 기도 시간에 분심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성당에 앉아 묵상을 하던 중에 자꾸만 자전거 생각이 났다. 어쩌면 수도생활이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자전거를 타는(수도원 안에서 살며, 분투하는) 일과도 비슷하겠구나 하는 생각. 나는 옳고 그른 것이 중요한 사람이라, 자전거를 '타야지'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리막일 땐 감사하게 시원한 바람도 느끼고 속도감도 즐기며 타고, 오르막일 땐 끙끙 거리면서도 애쓰며 '타야' 한다고. 수련소 시절, 오르막에선 늘 자전거를 끌고 가서 내리막에서만 자전거를 타고 오는 자매들도 있었는데, 내심 반칙?처럼 여기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모름지기 자전거는 타야 하는 거지. 힘들다고 끌고 가면 그게 자전거인가. 그런데 이쯤 살면서 돌아보니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가야 하는 때도 있구나 한다. 울퉁불퉁해서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갈 수 없는 길을 만나면 어쩌겠는가, 내려서 끌고 가야 하는 거지. 좀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였었다. 그리고 피정을 들어왔다. 

 

난생 처음으로 난 자전거를 끌고도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을 만났음을 알았다. 어쩌면 자전거를 세울 수조차 없는 길. 자전거를 세우면 내가 설 데가 없고, 내가 서면 자전거를 세울 데가 없었다. 꼭 길을 잃어야만 들어서는 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런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좁고 바닥도 험한 길. 어쩌면 강을 건너야 했던 걸까. 드문드문 놓여진 징검다리를 건너 저 편에 닿아야 하는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땐 자전거를 짊어지고라도 가야한다는 걸, 자전거를 꼭 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전거를 짊어지고도 가야 하는 삶. 자전거를 두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