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RB 27,4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27,4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하나 뿐인 마음 2020. 6. 16. 22:21

 

 

23장부터 30장까지는 잘못과 교정에 관한 규칙, 특히 장상과 공동체 입장에서의 노력에 관한 규칙들이다. 사실 이 규칙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의문을 많이 품게 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이후 나오는 보속과 치유에 관한 규칙(43-46장)을 합치면 모두 12장으로 규칙서에서 꽤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규칙들을 묵상하면서 의문을 넘고 넘다가 형제가 교정의 단계를 밟고 있을 때 나머지 공동체 형제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해야하는지에 가 닿았다.

 

"만일 어떤 형제가 반항하거나 불순종하거나 교만하거나 불평하거나 혹은 성규의 어떤 점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거나 자기 장로들의 명령을 멸시하거든"(RB 23,1) 교정의 단계가 시작된다. 물론 교정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열거된 6가지의 잘못들부터 묵상을 시작해야 했다. 마음 속에서 쉽게 일어나느 반항, 내뜻을 우선하는 고집스러운 마음(여기서 불순종이라 번역된 contumax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완고하게 저항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를 낮추지 못하는 교만, 쉽게 자주 품고 내뱉는 불평, 성규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거나 고려조차 하지 않는 태도, 장상들의 명령을 선악시비에 비춰 판단하고 낮추어 보는 생각과 태도... 어느것 하나 선뜻 나는 아니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처음엔 남몰래 훈계를 하고, 고치지 않거든 공개적으로 책벌한다. 그래도 고치지 않거든 의미를 아는 경우엔 파문(excommunicatio)에 처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육체의 벌에 처한다. 제일 먼저 '남몰래' 훈계를 하라는 성인의 배려가 참 고맙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자존심 때문에 얼른 바로잡기 어려워 상처가 곪아버릴 수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남들이 모르는' 단계에서 돌아서기 마련일 것이다. 

 

큰 잘못에 큰 댓가가 주어지지만 작은 잘못이라도 고치기를 거부하면 점차 큰 교정 단계로 간다. 잘못의 크기보다 '교정'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겠다. 베네딕도 성인은 실수나 잘못 자체보다는 실수나 잘못을 한 후에 자존심이나 수치심을 핑계로 뉘우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보속하지 않으려 하는 교만을 더 큰 잘못으로 보았다. 

 

가벼운 잘못의 경우는 공동 식탁에서 제외되고, 성당 공동 전례에서 역할을 제한 받는다. 잘못한 형제가 공동 식탁에서 제외될 때 나머지 공동체 형제들은 그 형제가 보이지 않는 빈 공간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공동 시간전례 역시 기도의 역할은 비워둘 수 없으니 형제의 역할이 있다면 공동체는 그 역할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중대한 잘못일 경우에는 공동 식탁과 성당 모두에서 제외된다. 형제들끼리의 교제나 대화도 금지되고 일도 식사도 혼자 하며 강복도 받을 수 없다. 이 형제를 지켜보는 공동체 역시 그와 교제나 대화를 하지 못함으로써 친교의 기쁨을 절제해야 하고, 일이나 식사에 관련된 소소한 노동 역시 대신 해야 한다. 그가 강복을 받을 수 없기에 공동체는 그에게 강복을 빌어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혹시나 다정이 과하여 아빠스의 허락 없이 파문당한 형제와 교제하거나 말하거나 소식을 전하면 그 역시 파문의 벌을 받게 된다(제26장). 

 

이렇게 공동체는 형제가 교정의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식사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공동의 일에 생기는 공백을 받아들여야 한다. 늘 함께 살아가던 형제와 떨어져 있어야 하므로 그의 난 자리의 허전함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함께'에서 배제될 때, 형제들끼리의 교제나 대화 등 친교의 일부도 사라지고 '강복'도 일부 사라진다.

 

아빠스가 잘못을 저지른 형제들을 보살펴야 하는 장에서도(제27장) 공동체의 역할이 나온다. 먼저 연로하고 지혜로운 형제들을 보내어 흔들리는 형제를 거의 남모르게 위로하게 하고, 겸손되이 보속할 수 있도록 권유하며,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위로하게 한다. 또 그에 대한 사랑을 확인시켜 줄 것이며, 또 모른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RB 27,2-4 참조) 나는 특히 이 부분이 너무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읽고 눈을 감은 채 묵상하기를 반복했다. 사랑하다 못해 존중까지 해야지만 할 수 있는 보살핌이 아닌가. 그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권유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선배들을 따로 뽑은 후 혹여나 자존심마저 다칠까 염려하여 남모르게 위로하고,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위로한다. 성인은 누구의 잘못이기에 앞서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지 않도록까지 배려한다. 그리고 공동체 모두가 그를 위한 사랑을 끝까지 놓치 않았음을 기어코 확인 시킨다. 여기까지는 조심스럽고 섬세한 일이기에 지혜로운 선배가 해야하고 나머지 공동체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노력이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함을 보거든, 더 큰 방법을 사용할 것이니, 아빠스 자신과 모든 형제들이 그를 위한 기도를 바쳐,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주님께서 연약한 형제에게 건강을 주시도록 할 것이다.(RB 28,4-5)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공동체의 수도자들이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하느님께 간청함이다. 아빠스를 포함한 모든 이가 약점과 한계를 지닌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하며, '그분은 그 양을 당신의 거룩한 어깨에 메고 양의 무리로 다시 데려다 주실 만큼 그 양의 연약함에 동정이 극진'(RB 27,9)하셨음에 의탁하는 것이다. 

 

책벌에 이어지는 파문이라는 단계에서 불이익을 준다던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시키는 등의 억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친교에서 배제시킨다(excommunicatio)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형제가 교정 단계를 밟는 동안 공동체의 다른 형제들에게도 그를 위한(그가 알지 못한다 해도) 역할이 있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다른 의미로 그 형제의 파문과 회복의 과정에 동참하는 공동체. 그들은 잘못한 형제를 외면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기도하고 공백을 견디며 형제의 역할을 나눠 가지고 무엇보다 대화, 교제 강복 등의 금지도 함께 공유한다. 

 

이는  끝까지 그 형제의 약함을 그저 견디겠다는 것이 아니라, 견디면서까지 그 형제의 회복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리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