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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6,20-25 저는 아니겠지요?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6장

마태 26,20-25 저는 아니겠지요?

하나 뿐인 마음 2018. 10. 3. 19:56


값이 매겨지고 사고 팔리는 노예처럼 예수님이 넘겨진다. 당신이 돈에 넘겨진다는 유다의 은밀한 계획을 다른 제자들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그것도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제자들 하나에 의한, 예수님과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에 의한, 마음 먹고 본격적으로 당하는 배반이다. 예수님은 누구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18절처럼 지금은 유다이지만, 언젠가는 다른 이름이 있기 때문일까.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저마다 묻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제자들. 이것이 되물어야만 있는 일인가. 나만 아니면 일인가.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만 빠져나가려고 하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팔아넘겨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여기는가. 와중에 그리도혼자만 중요한가. 대목을 묵상하는데, 안에서는 끝없이 질문이 올라왔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나의 분노는 과연 혼자라도 결연하게 배반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일까. 어쩌면 누구 사람이라도 배반하지 않아준다면 나의 배반이 죄송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혹은 속마음을 들켜서 되려 화를 내는 아닌가. 이유가 어떻든 간에 모두가 배반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에게도너는 아니다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없으셨다. 역시 배반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배신에 차이가 있다면, 치밀하고 은밀하게 배반을 계획했던가 아니면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던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모든 배반을 아시면서도 불러 모으셨고 가르치고 사랑하셨다. 가르침과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고, 이천 전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 대한 가르침과 사랑도 여전히 멈추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우리의 배반은 멈추었는가.


24절을 보자. ‘그자가 팔아넘길 이지만 예수님은-사람의 아들은- 떠나간다고 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주도권을 가지고 팔아넘겼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나의 주도권을 가지고 떠나가는 것이다.’ 말씀을 제자들은 당장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배신자와 함께 있으시면서도 담담하게 당신의 일을 하신다. 오히려 그자가 누구인지는 유다가 스스로 드러낸다. 모두가 (몹시 근심했다고 하니 아마도 주눅든 목소리로)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유다 혼자스승님이라고 부른다. 혼자만 침묵을 지킬 없으니 자신도 다른 제자들처럼 마디를 하긴 했는데, 주님이라고 부르진 못했다. 차마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한 주님 넘긴 것은 아니길 바랐던 걸까.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그래, 결국 유다의 말이 유다를 드러내고, 우리의 말은 우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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