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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6,6-13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6장

마태 26,6-13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하나 뿐인 마음 2018. 10. 2. 16:12


예수님이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신다. 스스로 죄인이라 외치며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치며 물러나야 했던 나병 환자의 집에 제자들과 함께 찾아가시고 식사도 하신 예수. 어쩌면 이 상황부터 제자들은 조금씩 불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느닷없이 한 여인이 다가오고,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예수는 놀라지 않으셨고 가만히 계셨다. 제자들은 불쾌함을 표출했다.

여인은 예수님만 봤다. 자신이 쏟아 부은 향유의 값어치를 신경 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남을 가난이나 비난도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예수님만 봤다. 사람들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용기 있게 예수님께 나아가 향유를 부은 이 여인처럼 기도하고 싶다. 내게 있는 가장 값진 것을 온전히 드리는 기도를, 내 시간 내 노력 모두가 오로지 예수님을 향하는 기도를, 숨은 의도가 없는 순수한 기도를, 몰입하고 행동하는 단순하면서도 과감한 기도를.
반면 제자들은 향유를 봤다. 향유의 값어치 즉 돈을 봤다. 하지만 비싼 향유를 바쳤음에 놀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걱정되었음이 아니라 무언가가 낭비되었음에 불쾌해 했다. 그 큰 낭비가 자신에게 오지 않아서였을까, 자신은 한 번도 하지 못한 큰 봉헌이라 질투가 났던 것일까. 제자들은 이를 두고 적당하지 않은, ‘허투루’라고 했지만, 비싸게 팔아 나누어 주는 것도 적당하고 온당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는 것인지, 어떻게든 자신들의 시기와 질투를 가리고 싶은 것인지. 여튼 돈을 먼저 본 건 확실한 것 같다.
예수님은 향유의 가치에 신경 쓰지 않으시고 여인의 의도, 원의에 관심을 가지셨다. 여인이 왜 이러는지에만 마음을 두셨다. 당신을 눈앞에 두고도 돈만 보고 있는, 매사에 비끗거리는 제자들의 마음을 나무라실 만도 한데 그닥 탓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면서 ‘제자들이란 무릇 늘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더 의미심장한 말씀,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원히 떠나갈 제자를 끝내 잡지 못하셨다.

이제 여인을 조금 더 바라보자. 여인은 하느님의 뜻대로 임금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는 구약의 대사제처럼 예수님 앞에 서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드러내고 있는 여인. 예수님이 한 여인(당시의 여인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보자.)에 의해 도유되고 있는 이 장면은 하느님의 방법을 드러낸다.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시는 분,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들어올리시는 분께서 여인을 당신의 자리에 두셨고, 예수님은 그 여인을 통해 하느님을 보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다.
잠시 내 서원을 생각한다. 수도자는 자신의 서원을 통해 그리스도를 온 세상의 왕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를 막을 것이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의 임금이심을, 나 자신을 바침으로써 드러낸다. 수도자는 예수님보다 귀할 리는 없지만 자신이 지닌 가장 값비싼 것을 봉헌하고, 예수님은 비록 보잘 것 없다손 하더라도 그 수도자를 통해(서원을 기꺼이 받으심으로써) 세상의 왕으로 드러나신다. 그리고 서원을 하는 것과 서원을 받는 것 모두 하느님의 뜻임을 인정하신다. 내 삶을 내 뜻으로 살아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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