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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6,31-35 우리는 모두 정말 진심이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본문
마태 26,31-35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31절)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눠 먹은 제자들이 그날 밤 뿔뿔이 떨어져 나간다. 제자들에게 넘겨진 예수님 역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상황(제자들의 배신, 수난, 죽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신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31절 참조; 즈카 13,7)는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모든 것은 팔아넘긴 유다의 탓도, 죽음을 공모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탓도, 뿔뿔이 흩어질 나약한 제자들 탓도 아니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말씀이 어렵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긴 하지만, 분명 일이 어그러지도록 만든 누군가의 탓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선을 외면하과 악을 저지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남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고, 말이나 행동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과는 커녕 후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분명 있고, 남을 짓밟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도 죄값을 치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있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를, 나라를, 세상을 이만저만 훼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또 말하고 싶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순투성이이고 부조리해 보이는 모든 일들이 실은 어그러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꼬인 매듭이 결국 하나의 줄로 이어지듯 하느님의 뜻은 결국 하나의 줄로 이어진다고.
나는 여전히 하느님 앞에서 나의 말을 하고 싶고, 베드로도 나처럼 또 자신의 주도권을 과신하여 행사한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33절) 예수님이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거라는 말씀을 듣고도(예수님은 베드로를 탓하지 않으신다. ) 또 호언장담을 한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35절)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모두 그렇게 말했다. 베드로는 정말 진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말 진심이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비록 수도 없이 무너지긴 했어도 여전히 그 진심을 품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 역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믿었을 것이다. 지금 조금 두렵긴 해도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면, 분명 내가 선택한 ‘옳은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자신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도 모두 무너졌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듯 이들의 무너짐도 끝이 아니었다. 그 ‘진심’은 결국 이루어졌다. 제자들은 결국 스승에게로 돌아와 다시는 떨어져 나가지 않고 각자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증언하며 예수와 함께 죽었다. 우리의 기도도, 서원도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이미 수도 없이 실패했다. 내게 있는 모든 것, 목숨까지도 바치겠노라 제대 앞에 엎드렸던 그때의 기도, 주님께서 내 모든 것을 받아주셔야 내가 비로소 살 수 있다는 고백,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바치는 것이야말로 나의 희망이며 주님은 내 희망을 부디 어긋나게 하시지 말라는 청원도 삶을 거듭하면서 수도 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제자들처럼 우리의 간절했던 기도 역시 종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와 함께 주님이 이루실 것이다. 주님이 받으신 서원이시기에 주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다. 당신께 바친 것은 이미 당신의 소관이니, 당신께서 이루실 것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 사람의 준비와 예수님의 준비가 있다. 우리의 삶에도 나의 계획과 예수님의 계획이 있다. 파괴하려던 계획마저도 결국 생명으로 바꾸시는 주님께서 더욱 더 주도권을 행사하시도록 우리의 삶을 그분께 내어맡길 때 우리는 빛으로, 해방으로, 생명으로 나아간다. 인간 눈에는 비록 초라하고 비참하고 볼품 없으며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 길이 결국 부활로 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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