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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엿보다 (203)
깊이에의 강요
나는 무엇에 흔들리는가. 무엇이 나를 미혹하며, 나는 무엇에 그리도 쉽게 무너지며, 혹은 나는 무엇에 그토록 '나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가. 뜻하지 않게 주어진, 수녀원에 홀로 남은 날. 미사 시간을 피해 하루동안 컨저링2와 곡성을 연달아 보았다. 애초에 이런 영화는 '합리적' 논리 전개를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영화 초반부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정리'를 하고 있었다. 감독이 펼쳐놓는 치밀하면서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는지...이런 영화는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봐야 하는 것. 기이하고 무서운 일들(범죄라기 보다는)이 벌어지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 그저 '나' 같다. 내 안에서, 어쩌면 펑범하고 초라하기까지한 여느 한 인간 안에서 일..
사랑했던 것들이 곁을 떠나가는 경험이 너무도 지독해서 사랑했던 아내가 있는 곳으로 자신도 떠나가려던 남자가 서서히 그리고 다시 곁을 돌아보며 못다한 사랑을 마무리하는 이야기. 어떻게 하나같이 이렇게 이 남자를 아프게 하고 떠나갈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어서 맘 놓고 웃지도 못했던 영화다. 세상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도 서운해서 한 톨의 미련도 남지 않았던 그가 결국 자잘한 '사랑'의 기회를 뿌리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사랑을 완성한다. 그가 그리 괴팍했던 것도, 그가 끝내 모른척하지 못했던 것도 다 사랑이다. 너무나 반듯한 사랑. 그리고 보면 떠날 이유도, 머물 이유도 결국은 동일한 것인가 싶다. 세상에 사랑은 넘쳐나는데 반듯한 사랑은 드물다. 저마다 사랑이라 외쳐대는데 자기기만인 사..
어떤 이는 그 도시에 살기 위해 눈을 감았고어떤 이는 그 도시에 살기 위해 삶을 내걸었다. 비대해진 종교는 하늘을 끌어내리지도 하늘을 위해 자신을 버리지도 못한다.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세상 한가운데서 우뚝 서기 위해 성전 대신 바벨탑을 쌓아 올렸다. 제작년엔가 보스턴에 갔었다. 내가 가본 보스톤 주교좌 성당은 새로 지어진 성당이었다.무너질대로 무너져 어마어마한 소송비를 더 이상 갚을 수 없었던 보스턴교구는 주교좌 성당을 넘겨야했고어느 신심 깊은 신자가 지금 주교좌 성당이 들어선 그 넓은 땅을 단돈 $1에 팔았고 보스턴교구는 다시 주교좌 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위엄 넘친 그 성전이 다시 세워지는 데에는 수많은 신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교회의 전통은 사제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라 내세우고..
검은 사제들은 강동원 때문에 보는 영화!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는 내용이야 사실 정해진 것이고 엑소시즘을 행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든지 악령의 존재에 맞추든지 등 포커스가 중요하다 싶은데, 검은사제들은 사실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내게 있어서는. 또라이 같은 이단아 이미지의 사제가 등장, 정작 악의 세력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할 교회 공동체에서 외면당한 채 홀로 분투한다는 설정 역시 엑소시즘의 공통점이 아니던가. 이 영화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아 나같은 수녀에게도 역시 강동원만 남음 ㅎㅎ 에밀리 로즈가 나오는 엑소시즘엔 끊임없이 공포를 일으키는 사악한 존재의 악령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저 사람이 미워서 괴롭히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가련한 악령이 나온다. 존재 증명보다 연명에 가깝다 싶은 존재. 타인에..
휴가라고 한 일이 뮤지엄 가고 서점 둘러 보고 영화보고....^^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라 예전에 읽었던 내용을 더듬어가며 기억과 짜맞추면서 본 영화.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등산화 한짝을 놓쳐버린 후 나머지 등산화마저 던져버리는 장면이다. 발이 부르트는 것도 모자라 피가 흐르고 겨우 붙어 있는 발톱을 제 손으로 뽑아버리는데 등산화가 산 밑으로 떨어져 버린다. 세상에 남은 거라곤 몇개 되지도 않는 인생에 등산화마저 멀어져가는 걸 지켜보는 심정. 악다구니를 부리다 나머지 등산화마저 던져버리는 셰린의 모습을 보며 새것이라고, 흔하지 않는 것이라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다시 못구할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주문을 외우듯 옆구리에 끼고 사는 짝없는 나만의 등산화는 무엇인가 생각했다. 부질 없는 미련...
올리버 색스 할부지를 기억하며 오늘의 문화교실. "제 아들이 건강하게 태어났을 때 왜냐고 묻지 않았죠. 왜 내가 이렇게 행복한지 이렇게 완벽한 아이에 답하기 위해 뭘해야 하는지... 또 이렇게 완벽한 삶에 답하기 위해선 뭘해야 하는지. 그러나 그 애가 병에 걸렸을 때 전 왜냐고 물었죠. 전 알고 싶었지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찾아가서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이 상태를 멈추라고, 제발 멈추라고, 제 아들이 아파하는 게 안 보이냐고 제 아들은 고통스러워해요. 제발 멈춰 줘요." 잘 살때는 묻지 않았던 '왜'를 고통의 시간에 묻게 되는 인간. 행복할 땐 하지 않던 기도를 고통의 시간에 바치게 되는 인간.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면서 묻고 깨닫게 되는 '의미'. 어쩌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