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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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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다

곡성

하나 뿐인 마음 2016. 6. 18. 14:28


나는 무엇에 흔들리는가. 무엇이 나를 미혹하며, 나는 무엇에 그리도 쉽게 무너지며, 혹은 나는 무엇에  그토록 '나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가. 


뜻하지 않게 주어진, 수녀원에 홀로 남은 날. 미사 시간을 피해 하루동안 컨저링2와 곡성을 연달아 보았다. 애초에 이런 영화는 '합리적' 논리 전개를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영화 초반부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정리'를 하고 있었다. 감독이 펼쳐놓는 치밀하면서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는지...이런 영화는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봐야 하는 것. 


기이하고 무서운 일들(범죄라기 보다는)이 벌어지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 그저 '나' 같다. 내 안에서, 어쩌면 펑범하고 초라하기까지한 여느 한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끝(상상으로 끝맺을지, 더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를)을 알 수 없는 어두움의 시작. 악의 기본 속성은 '이유 없음'이다. 내게 있어 하느님은 '모든 이유'이시듯 이 순수한 악은 그 반대, 이유가 없다. 일부가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 완전한 파괴를 향한다. 


모르겠다, 누가 진짜 악마인지. 누가 귀신이고 마을 전체를 독하게 헤집어 놓은 그 사악한 존재가 과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모든 등장 인물은 그저 나 같고, 또 나 같다. 찌질하지만 누구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품을 줄 아는 아버지 같은 나, 신의 힘에 기대 살면서도 정작 내가 신인 양 힘을 쓰곤 하지만 결국 더 큰 힘 앞에서는 별 도리가 없는 한갓 인간인 나, 삶 자체가 기이하고 비밀투성이인 나,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나, 세상의 불의에 맞서 분노할 줄도 알지만 아주 작은 이기심에 한순간 무너지기도 하는 나, 그분 뜻과 도덕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그분 뜻과 나의 뜻 사이에서 떳떳하지 못한 나, 약하고 어린 나, 약한 만큼 신이 필요한 나...


악마가 사람을 끝없이 조정한다라기 보다는 악마가 끝없이 자리를 옮겨가며 그 곳에, 그 사람 안에 깃들어 사악함을 뿜어댄다. 주위를 망치고 깃든 숙주도 망친다. 의심할 줄 모르는 순수한 영혼은 쉽게 그를 맞아들이고, 자책보다는 남탓이 먼저인 비겁한 마음은 이미 악마의 자리이다. 그저 살기 바빠 의무와 책임마저 저버린 가련한 영혼은 악마에게 쉽게 먹히고 세상이 지긋지긋하여 분노만 쌓인 마음에도 악마는 쉽게 들어선다. 그렇게 수많은 '나'는 악마 앞에 취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상처난 부위가 쉽게 감염되듯 우리의 분노에 상처 입고 죄책감에 시달린 마음에 악마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에 흔들리는가. 

무엇이 나를 미혹하며, 

나는 무엇에 그리도 쉽게 무너지며, 

혹은 나는 무엇에  그토록 '나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가. 


죄는 타인에게 흔적을 남기고, 악은 스스로를 위해 기록한다.

예수는 자신에게 죄인의 흔적을 남겼고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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