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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우리들 본문
어디서부터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그저 가만히 앉아 가만히 영화를 보고, 가만히 영화관을 빠져 나왔다. 사소한 것들이 우리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그 아픈 마음은 우리들 틈을 얼마나 갈라놓는지. 가만히 앉아 팔짱을 낀 채 삼십 년도 넘은 시간으로 흘러갔다가 며칠 전 시간으로도 흘러갔다가 영화인 건지 내 마음인 건지 가늠해보다가.
우리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주저하게 했던가. 그렇게 주저하다가 얼마나 서로를 할퀴었던가. 아픈 마음에 나는 얼마나 움츠렸던가. 그보다 더 많이는 겁먹은 걸 감추기 위해 사납게 소리쳤던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라 생각했던 그때, 아주 작은 용기로도 바꿀 수 있었을 순간들. 그러지 못해 후회가 된다기 보다는, 그때의 나에게 선이 엄마가 그랬듯 "선아, 엄마한테 말해봐."하고 싶다. 그리고 윤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불편했던 건, 시작부터 나오는 편 가르는 장면. 터치볼을 하기 위해 편을 가르는 그 방법이 처음부터 불편했다. 거의 마지막 장면까지 아이들은 그렇게 편을 나누었고, 누구는 시작하자마자 선택되고 누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타는 마음 애써 숨겨가며, 그 마음을 미소로 가려가며 버텨야 했다. 아이들의 놀이마저도 어른들의 세상과 같았다. 하루는 홀짝으로, 하루는 왼쪽 오른쪽으로, 하루는 키순서대로, 하루는 둘씩 가위바위보로... 그렇게 편을 나누면서 오늘은 이 애와 함께 뛰고 내일은 저 애와 함께 뛰고, 그렇게 놀면서 친해지고 단단해지는 성장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까. "그게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세상의 모습이잖아."하고 누군가 내게 말해준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재밌고 선해보이던 담임선생님을 보고 있는 게 힘들었다. 얼마 전 강아지가 있는 케이지로 넘어가려고 자신의 케이지 벽을 넘어가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았다. 작은 고양이가 애써서 케이지를 올라가고, 옆으로 넘어가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밑에서는 고양이가 너무 반갑고 그저 좋기만한 착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고양이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좋아서 하는 강아지의 반가움의 표시는 오히려 내려가려는 고양이의 얼굴을 쳐서 고양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만나는 순간도 늦추고 있었다. 내가 건조한 사람이라 그런지 동영상의 강아지나, 담임 선생님처럼 착한 사람의 별뜻 없는 행동이 너무 불편하다. 생각을 멈추면 늘 하던대로 흘러갈테고 상처 받는 아이들을 어느새 절망할테고 약삭바르게 속여가며 살던 아이들은 그래도 되는 줄, 어쩌면 그래야 잘 되는 줄 알겠지.
난 조용히 성당에서 기도하고 만나러 오는 신자들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수녀의 삶으로는 만족하지 않겠다, 평생. 세상의 아픈 모든 곳에 달려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함께 분노하겠다. 내 기도 안에는 자비와 희생 뿐만이 아니라 분노와 울분도 녹아 있어야 한다. 알 수 없으면 기도도 해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수시로 보고 들으며 힘 닿는 데까지 내가 찾아가겠다. 발이 갈 수 없다면 눈과 귀와 마음은 달려가겠다. 멀리 있는 사람들 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동네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 모두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올해 첫 소나기다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쉬웠던 지난 순간들이 싹 씻겨 내려가는 여름의 오늘.
"그럼 언제 노는데?"라던 윤이의 말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