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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모두가 뜨거웠던 그때 1987 본문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채 녹지 않은 강 얼음 위에 뼛가루가 얹히는 장면이었다.
채 녹지 않은, 녹기 시작했지만 얼음으로 덮힌 강.
뿌려졌지만 흐르는 강물따라 흘러가지 못하는 넋.
아래는 흐르지만 위는 흐르지 못하는 시간.
아직도 그럴 것이다. 아래는 부지런히 흘러가지만 여전히 위는 군데군데가 얼음이라 흐르지 못하고, 수많은 이들의 한 서린 넋은 온전히 떠나지 못하고 일부가 남았고, 차가운 얼음 위에 얹혀 흐르지 못한 혹한의 세월 위에 다시 얼어 붙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보다 더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역사의 증인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 단어는 바로 ‘혼자’였다. 하나처럼 뭉쳤지만 맞서는 순간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혼자였다. 피를 나눈 형제라도 죽음의 길에선 혼자였고, 함께 붙들려 가도 핍박과 고문을 버티는 건 혼자였다. 눈물을 흘리고 구호를 외치고 진을 짜고 후퇴를 하는 그 모든 순간에도 결국 혼자였고 부축을 받을 순 있어도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음을 떼는 것도 혼자, 동료를 구하기 위해 돌아서는 것도, 최루탄에 쓰러지는 것도 혼자였다.
그 혼자였던 한 사람이 두려움 속에서도 맞서 주었기에,
그 혼자였던 한 사람이 끝내 침묵했기에,
그 혼자였던 한 사람이 끝까지 버텼기에,
그 혼자였던 한 사람이 맨 앞에 서 주었기에,
그 혼자였던 한 사람이...
얼마 전 한국어 미사경문 수정이 있었다. 원문에 충실했다지만 (심지어 어떤 부분은 원문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의 단어를 절대 포기하지 못했다. anima mea는 '제 영혼'인데, spiritu tuo는 왜 '당신의 영'이 아니라 '사제의 영'인가!) 의문이 가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감사 기도 중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부분이 “많은 이를 위하여”로 바뀐 이유였다. 엄밀히 말하면 바뀐 이유라기보다는 원문에 대한 의문인데,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도 그러하고 하느님은 모두를 위하여 오셨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저 부분은 ‘모든’이 아니라 ‘많은’이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왜 모든 이를 위하여 피를 흘리지 않고 많은 이를 위하여 피를 흘린다 하였을까.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 의문을 계속 떠올리게 된 건, 어렴풋이나마 ‘모든’이 아니라 ‘많은’일 수 밖에 없음을 수긍했기 때문이다. 왜 박처장은 끝까지 후회하지 않았나.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편에 서주지 않았나. 왜 박종운은 그 세월을 그렇게 살고 있나. 왜 전두환은 여전히 저렇게 당당하고 사악한가. 왜 그 형사들은... 왜 그 정치인들은... 왜 그 검찰들은... 왜 그 사람들은... 그리고 왜 나는 수많은 후회를 남기며 살아 왔는가.
모두를 위하여 왔어도 모두를 위하여 흘려질 수 없었던 예수의 피.
그저 더 많은 이들이 되길 바라며 흘려진 피.
한 사람의 맞섬이 모든 이를 불러낼 순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진실의 편에 설 수 있게 했다. 나 역시 모두가 될 수 없는 '아쉬운 부족함'에 집중하기보다 ‘많음’에 집중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