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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3/14 (2)
깊이에의 강요
최승자 에세이. 난다. 죽음을 생각했다. 한 개인의 죽음, 어떤 세대의 죽음, 시대 사조(思潮)의 죽음, 언어의 죽음…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시작. 전혀 다른 출발. 그리고 내겐 첫 죽음의 경험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시간과 경험상으로는 두 번째이나 유일하기에 여전히 첫 죽음의 경험인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시인과는 달리 이 죽음을 겪으며 오히려 나는, 습관처럼 그저 몸에 밴 신앙의 껍질을 겨우 한 겹 벗어버렸다. 사람이, 의식이 없는 편에 가까울 그 순간, 모든 것과 이별하는 그 강제적 순간에 그렇게 차분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자신이 곧 도달하게 될 하늘 나라에 대한 명료한 확신 하나만 남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어린 아이가 그동안 듣고 꿈꾸던 하늘 나라는 동화책의 마지막..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루카 6,38) 아버지께서 내게 자비로우시지만 내가 아버지께 자비로울 수는 없는 것처럼, 내가 주는 사람과 내게 주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 준 사람에게서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라(간혹 그러기도 하지만) 그분에게서 받는다, 넘치도록 후하게. 그러니 우리는 다만 심판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고, 단죄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고, 용서하려 노력할 뿐이고, 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심판받지 않기 위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죄받지 않으려고 단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으려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도 메마른 겨울이었다. 타들어가는 논과 밭을 위해서 비를 기다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