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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본문

雜食性 人間

죽음의 수용소에서

하나 뿐인 마음 2013. 1. 16. 15:48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빅터 프랭클 지음
출판사
청아출판사 | 2012-01-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가격비교

빅터 플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르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삶으롭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그 어떤 것도 내 영혼을 집어삼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지난 시간동안 얼마나 부정하고 싶었던가 고백한다.
힘든 밤이 계속될 때에 난,
내게 닥친 일들이 나를 그만 집어삼켜주었으면 했고,
새벽이 다가옴과 동시에 슬슬 고개를 드는
삶에 대한 희망과 미련 때문에 고개 저었다.

플랭클 역시
`그때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시작한다.

어렸을 땐 왜 나에게?라는 질문이 수도없이 고개를 쳐들어
원망할 대상을 찾느라 인생을 허비?했고,
좀 지나서는 원망할 수 있는 대상 따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쓰라린 패배감으로
나 스스로를 고달프게 만들었었다.
나도 모르는 매달리며 바쳤던 기도, 교리교사 생활, 천사의 집 봉사활동, 빠스카 성서모임. 수많은 친구들, 책과 음악...
과거에 매달리게 하기보다 기왕? 남은 내 인생 의미있게 보내보자 싶었고,
그때부터 내 인생은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입회 후 30일 피정을 하기 전까지
`고통`이라는 주제는 나를 괴롭혔다.
알람을 맞춰놓은 듯
수시로 `고통`이 찾아왔다.
고통을 주제로 다루는 소설, 영성책을 이잡듯 뒤졌었다.
피정을 할때마다 주어지는 피정지향과 달리
내 마음속 주제는 언제나 `고통`이었음은 물론이다.

난 묻고 또 물었고,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리고 30일 피정 동안...
돌아가신 예수님과 함께 서늘한 피정의 집 수방에서 이틀을 꼼짝않고 보낸 후...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는 이 책에, 빌터 프랭클에게 진심으로 동의한다.
앞으로 남은 내 시간 역시,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내 주위의 상황과 사람들이 던지는 의미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으므로!

내 삶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아우슈비츠 행을 결심할 수 있는가?

20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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