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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어떻게 읽는가 본문
안소근 지음. 성서와함께.
누가 나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무슨 학위가 있다거나 성경에 대한 고매한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묵상을 건져올릴 정도로 영성이 심오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말씀은 내게 있어 공부가 아니라 기도일 수 있었다. 게으른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맛들여서 한 ‘수행’이기도 한데, 부르심을 들었던 것도 말씀 때문이었고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말씀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 오직 하나. 나는 말씀을, 더 잘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이 책은 성경에 관한 비교적 최근에 나온 교회의 공식 문헌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주님의 말씀〉(2010)과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내놓은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2001), 〈성경과 도덕〉(2008), 〈성경의 영감과 진리〉(2014)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 성경 해석의 기본 전제들을 비교 설명해주면서 반석 같은 토대 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조만간 네 문헌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p.32
"인간 편에서 아직 하느님을 찾아 나서지 않았고 주파수를 맞추지 않았기에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 말씀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말씀에 응답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하느님의 대화 상대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지닌 특전입니다."
p.34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신앙입니다.” (주님의 말씀 25항)"
p.35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응답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응답이 우리의 삶이 없으면 그 말씀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48
"“선한 이들의 삶은 (성경의) 살아 있는 해석” (성 대 그레고리오)"
p.51
"말씀께서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특전적(特典的) 장소는 전례입니다.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과거의 문헌으로서가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살아 있는 말씀으로 선포됩니다."
p.55
"“교회는 성무일도를 바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끊임없이 찬미의 제사를 바친다. ··· 이 기도는 참으로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신부의 목소리이며, 또한 자기 몸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이다”(성무일도 총지침)"
p.59
"사실 수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수도자는 그 일에 삶의 전체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p.65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문장들을 들려주시거나 하늘에서 책 한 권을 내려주시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셨습니다’(요한 1,18). 이제 교회가 그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로 하느님을 증언하는 동시에, 교회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p.65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일은 하느님의 말씀을 명시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정의감에서, 또는 인도주의적 정신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에 투신하는 데에는 다른 동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살고 자신의 삶으로 말씀을 입증하기 위해서이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시던 일을 역사에서 지속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p.66
"교회의 행위들은 인간적 동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우리가 세상에 투신해야 한다는 것과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가 지닌 책임을 일깨우시는 것”(주님의 말씀 99항)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세상에 대한 투신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알게 됩니다."
p.136
"성경에서 도덕은 우선적으로 인간의 응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선물의 계시이며, 인간의 응답은 그러한 하느님을 체험한 뒤에 잇따릅니다. 성경의 하느님은 법전을 주시기 전에 당신을 알게 하셨고, 이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과 행위에서 그분의 모범을 따르도록 이끌었습니다."
p.137
"창조 가운데에서도 윤리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간의 창조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창세 1,26). 그것은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어 창조된 세계를 알고 이해하며, 자유를 지니고 있어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고, 하느님의 통치 아래에서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을 돌보는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본받아 하느님과 일치하여 행동할 수 있고, 하느님은 물론 사람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명이 거룩함을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p.138
"인간은 다른 어떤 인간을 닮아야 하거나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그분 안에서 인간성의 완성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46
"하느님은 인간이 ‘악하지만’ 눈감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악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것이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약함이고 한계인 줄을 아시기 때문에, 그 약함보다 더 크신 당신의 자애로 인간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무상성’입니다. 인간이 훌륭해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하기에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인간을 그저 당신 것이라고 아껴주시는 것이 무상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p.146
"하느님께서는 계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세워주십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창세 9,13)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서 “무지개”라고 번역된 단어는 무지개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보통은 활을 뜻합니다. 그 활은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로서 ”하느님과 새로이 태어난 구원된 인류 사이에 맺어진 계약“(21항)을 상징하는데, 하느님의 활이 땅을 향해 있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땅에 평화를 약속하심을 뜻합니다. 활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면 화살이 땅을 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149
"안식일에 관한 셋째 계명은 시간의 거룩한 차원을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시간을 몽땅 세속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데에 써버리지 않는 것, 하느님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이 이 계명에 속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주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위한 시간과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 노동을 멈추고 휴식과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p.157 ~ p.158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된다는 것, 이 깨달음이 바오로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가 새롭게 알게 된 하느님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느님, 인간이 의롭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을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보내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교회들을 세우며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가르쳤을 때에 율법이나 계명을 먼저 요구했을 리가 없습니다."
p.157
"먼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랑을 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계명이 부조리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길이 바로 그런 사랑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p.165
"제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행성사가 그렇듯이, 죄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에 합당하게 또 충실하게 응답하지 못할 때에도 하느님의 충실하심은 인간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p.166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죄는 그 죄로 인간이 하느님께 입혀 드린 상처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한 번 또 한 번, 하느님 편에서 손상된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많은 위기를 겪어냅니다."
p.182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랑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p.182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나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흠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복음은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p.184
"의인이 꼭 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 한때 구약의 현인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이 하느님의 충실하심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믿음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이 싹터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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