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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RB 제72장 수도승들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제72장 수도승들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

하나 뿐인 마음 2020. 6. 27. 14:21

 

 

하느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지옥으로 이끄는 쓰고 나쁜 열정이 있듯이, 악습에서 분리시켜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좋은 열정이 있다. 그러므로 수도승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

즉,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여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자들에게 열정을 금하지 않고 좋은 열정을 실천하여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나는 베네딕도 수도자들에게 '공동체 사랑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이 장을 묵상하며 '진짜가 되는 길'을 알려주려는 성인을 만났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장에서 성인은 수도승들에게 여덟가지의 '열정'을 가르쳐 주는데,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열정에 무언가를 더 첨가함으로써 '진짜'가 되길 간곡히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묵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피정에서 첨가되는 무언가를 묵상함으로써 사부 성 베네딕도가 알려주는 '진짜'가 되는 길을 더듬어 보았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They should each try to be the first to show respect to the other

해야하는 의무의 존경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은 상대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해야할 의무에서 자유로울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이 될 때 존경은 진짜가 된다.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supporting with the greatest patience one another's weaknesses of body or behavior

그저 인내하라는 말은 때론 우리를 지치게 하고, 덕행으로서의 인내가 아니라 목적없이 버티는 행위가 되기 쉽다. 우리의 인내가 공덕이 되도록 the greatest patience로 support하라고 말해주는 성인은 '지극하지'(greatest)하지 않으면 타인을 인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최상급의 인내만이 우리를 참 인내의 길로 이끈다. 형제들이게, 후배 수도자들을 위해 이 단어를 첨가하는 성인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earnestly competing in obedience to one another

형제를 흔들림 없이 마음으로부터 따르는 순종은 그 형제가 나를 자신에게 복속하도록 하지 않고 그 형제 역시 나를 흔들림 없이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한다. 순종이 순종을 부르는 상호 순명은, 그 어디에도 구애하지 않고 형제를, 형제 안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no one is to pursue what he judges better for himself, but instead, what he judges better for someone else

이기적 선택을 그만두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타적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참 형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낮추어 내가 높아지는 삶이 아니라 나를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나를 낮출 때 '나를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셨던 예수'를 닮아가고, 상대를 높일 때 그 안에 계신 예수를 높여드리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to their fellow monks they show the pure love of brothers

형제적 사랑도 때론 서로를 자유롭지 못하도록 구속하고 얽맬 수 있다. 우리는 상대를 향한 인간적 사랑이 권력이나 구속으로 오염될 수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깨끗한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서로를 키우고,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이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to God, loving fear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수도자의 하느님 사랑을 인간적인 사랑에서 신적 사랑으로 넘어가게 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인간을 깊이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는 있으나 엄연히 달라야 하기에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깊이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진짜 사랑을 하기를 원했다.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to abbot, unfeigned and humble love

아빠스를 ‘영적 아버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심 없는 진실함과 인간적 잣대를 기꺼이 내려놓는 겸손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먼저 언급되는 순서가 꼭 아래 단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4장 착한 일의 도구처럼) 왜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얘기한 후 아빠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처음에는 좀 의아했었는데 영적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되 경외심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인간적 차원을 넘을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면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먼저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하다 싶었다. 규칙서 어느 한 부분도 고심과 배려 없이 쓰이지 않았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let them prefer nothing whatever to Christ

이 말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진짜가 아닌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우선하라는 긍정적 표현보다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는 금령이 우리에게 주는 단호함. 수도자에게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may he bring us all together to everlasting life
지금까지는 이 앞부분까지에만 줄을 긋고 열심히 묵상하며 살았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내 수덕에만 집중하고, 함께 가야하는 길이라 여기면서도 내 일만 눈에 보였다. 피정에 들어와 이 장을 묵상하는데 이 마지막 문장만 마치 처음보는 문장처럼 여겨졌다. 주어가 바뀌었다는 메모도 이미 있었지만, 메모는 생경했고 놀라움은 컸다. 여태는 수도자 편에서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었는데 마무리는 ‘그분’이 하신다. ‘그분’이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정말 내 정수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고, 너무 놀라서 비틀거릴 것만 같았다. 그래, 그분이 하신다. 이 모든 것의 마무리는 그분이고, 내 삶의 마지막 문장도 그분이 쓰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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