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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RB 72,12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72,12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 뿐인 마음 2020. 6. 27. 22:55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RB 72,12)

지난 30일 간의 여정을 돌아보니 마음에 두 가지가 깊이 남아 있다. 하나는 그동안 잘 볼 수 없었던 ‘나머지 공동체 형제들’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베네딕도 성인의 '진짜'에 대한 갈망이다.

평일의 성대한 <아침기도> 때 늦게 오는 수도자를 기다리며 천천히 기도를 바치는 장면에서부터 공동체 형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달라는 51편을 그 형제와 ‘함께’ 바치기 위해 공동체는 자비를 간청하는 68편을 느리게 노래한다. 잘못에 대한 교정의 단계를 밟고 있는 형제가 있으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식사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공동의 일에 공백이 생기게 되고 늘 함께 살아가던 형제와 떨어져 있어야 하므로 그 허전함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함께'에서 배제될 때, 형제들끼리의 교제나 대화 등 친교의 일부와 강복도 일부 사라지는데 공동체는 이 모든 것들을 받아 안는다. 지혜로운 선배들은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게 다가가 자존심마저 다칠까 염려하여 남모르게 위로하고,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위로하며 공동체 모두가 그를 위한 사랑을 끝까지 놓치 않았음을 기어코 확인 시킨다. 나머지 공동체의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한 형제가 입회하고 서원을 하는 동안 공동체 형제들은 허락하고, 돌보고, 보살피고, 알려주고, 선택하도록 하고, 읽어 주고, 받아들여주고, 일원으로 간주하고, 함께 '받으소서'를 노래한다. 공동 시간 전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형제들을 위해서는 나머지 형제들이 그를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빌어준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다. 이렇게 이번 성규 피정은 내게 '보이지 않던 공동체의 몫'을 낱낱이 보여준 피정이다.


그리고 성규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베네딕도 성인의 '진짜'에 대한 갈망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마음 깊은 곳의 의도가 동일한 수도자가 되도록, 겸손도 순명도 애덕도 섬김도 기도도, 이 모든 것들이 '진짜'이길 원했다. 상호 존경만도 놀라운데 더 나아가 '먼저' 존경하고, 목적 없는 버팀이 되지 않도록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고, 상호 순명도 '다투어' 실천하고, 이기적 선택을 그만두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오히려 남에게 이로운' 것을 따르고, 형제적 사랑이 권력이나 구속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되 인간적 사랑에서 멈추지 않게 경외심을 가지고, 아빠스를 사심 없는 진실함과 인간적 잣대를 내려놓는 겸손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않는 단호함을 지닌 '진짜' 수도자.

나머지 공동체 형제들에 대한 묵상은 여태까지 나를 보이지 않게 성장하게 한 많은 수녀님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사는 나역시 드러나지 않아도 서로를 키우고 보듬는 '나머지 공동체 형제들'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진짜'에 대한 성인의 갈망은 나를, 수도자의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 저 깊은 곳까지 '수도자'인 사람이 되도록 죽는 날까지 노력하도록 이끈다. 무엇보다 나의 이 다짐을 보시고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RB 72,12)임을 나는 안다.

우리를 수도자로 불러주신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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