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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여자 없는 남자들 본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단편보다는 장편을 좀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서로 엮을 마음이 없었다. 반 정도 더 읽은 후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 '아, 이 책 제목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구나.'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여자'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나름으로는 '여자'란 '마음을 놓을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인 나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여성성'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반대의 '남성성'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되 여태 몰랐던 낯선 존재의 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로소 안심하게 되는 나. 자궁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원초적 위안이 아니라 순식간에 나를 자궁이라는 원초적 위안의 기억으로까지 소급하는 양수 같은 존재. 전혀 다른 형태로, 결합이 아니라 공존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충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니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책표지도 놀랍다. 아랫부분이 수면에 비친 그림자인지 수면 아래 존재하는 실체인지 애매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공존하고 있을 때 전체 혹은 실체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자와와 만남, 드러나지 않았던 나머지 실체와의 만남이 절실하기에 내가 이런 리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나란 인간은 나 자신을 사랑한 만큼 기도도 하고 책도 읽는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올해는 독서 실력이 형편없는 한 해였지만 나의 2014년 마지막 책이다. 새해에는 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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