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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본문

雜食性 人間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하나 뿐인 마음 2014. 11. 21. 10:06

​파커 J. 파머 지음. 글항아리. 

분노는 비통함이 걸치고 있는 가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신념을 '적'에게 돌처럼 던지는 대신 고통의 근원을 서로 나눌 때, 우리는 마음을 열고 커다란 분리를 연결하는 통로를 찾을 수 있다.
P.0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론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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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인내, 개방성, 희망을 갖고 차이를 끌어안을 때에만 다양성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민주주의 인프라의 일부인 마음의 보이지 않는 역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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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긴장"이라는 것을 가능하면 줄여야 한다고 여기지, 우리 마음 속에 품어야 할 에너지로 바라보지 않는다. 낯선 생각, 가치, 경험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음을 더욱 광활하게 하고 너그럽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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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돈으로 조직된 권력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는 조직화된 민중의 힘이다.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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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공손함은 말을 조심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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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주의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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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경멸에 사로잡혀 우리 국민이 생산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의지가 주장되기는커녕 자각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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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아 보다 많은 자비심으로 자신을 열어갈 때, 부서진 마음은 치유의 근원이 되어 고통받는 타자와의 공감을 심화하고 그들에게 이르는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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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정치의 최상 수준에서 공공성이 실현되려면, 시민들이 지역적 장소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면서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대해 결정할 때 최선의 지도자들을 지지하고 최악의 지도자들에게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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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서 관여하는 대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죽기 시작하고, 과두정치 같은 것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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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해질수록 공동체적 구조물은 허약해진다. 그렇게 되면 독재 권력에 더더욱 취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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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할 만큼 부나 권력을 지니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의 욕구를 보살피기에 충분한 부와 이해력을 지내게 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운명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상상한다. -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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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의견을 분명하고 자신있게 발언하는 것만큼 특별히 타인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하는 태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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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심층적으로 상호 연결된 종이다. 우리는 모두 생명의 형태를 가지고 서로 얽혀 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의지하고 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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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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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대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타인들을 질투하면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데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게 귀를 기울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회피할 방법들을 찾기도 한다. 우리는 동료 시민을 신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을 포함해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보았기에 낯선 사람들을 신뢰하기를 어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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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민족의 위대함"을 아리안족의 우월성의 신화를 통해 복원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은 결국 평범한 독일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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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이끌려 소수의 시민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공동체의 직물을 난도질한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은 냉소 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무엇에도 관여하지 않고, 그러한 방관은 그 직물을 풀어헤쳐버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짜는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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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나 물건을 잃어버려 비통해 하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패한 경제 때문에 집을 잃었고, 비인간적인 기업의 결정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으며, 아이들이 뭔가를 잘못 선택하여 떠나갔고, 친구와 가족이 폭력 또는 죽음에 희생되었다. 그러한 상실에 직면하여 어떤 사람들은 더욱 비통함에 빠지고 위축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비심이 커지면서, 어둠과 슬픔의 에너지 안으로 스며드는 통찰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의 아픔으로 손을 뻗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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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등이 없는 공공 영역을 상상하지도 염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없는 삶을 염원하는 것과 비슷한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만 갈등은 추방된다. 물론 갈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쫓겨날 뿐이고, 폭력이 강요하는 단일함의 환상이 그 자리를 채운다. 건강한 민주주의 속에서 공적 갈등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장려되어야 한다.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것은 창의성을 북돋아준다. 그리고 참과 거짓,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등을 둘러싼 여러 비판적인 질문에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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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회적 건강에 기여하는 마음의 습관을 키우고 싶다면 국가를 죽일 수도 있는 마음의 병의 숨은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중 가장 주된 것은 내적인 공허함, 강력한 개인적 정체감의 결여다. 그것은 거짓되고 해로운 "의미" 체계에 빠져들기 쉽게 만든다.
P.0

많음 사람에게 내적인 영역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낯선 땅으로서 가장 가기 싫어하는 장소다. 내적인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생명을 주는 의미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두려움이 그 여행을 가로막는다. 이 미지의 땅에서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것, 지도도 없는 그 황무지에서 발견되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무섭게 하거나 심지어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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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에게 소비주의는 내적인 공허함을 달래는 선택의 마약이다. 우리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까닭은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거이 우리의 정체감과 존재 가치를 세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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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문제의 탓을 낯선 타인에게 엎어씌우면서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내면의 그늘을 인종, 사회계급, 종교,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면서, 자신에게 결핍된 것의 탓을 그들에게 돌린다. 다른 이들을 깔아뭉개고, 그들의 "열등함"을 배경으로 우리의 "우월함"을 주장하면서 정체감을 회복한다.
P.0

건강한 자아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으면서 공동체에 의존하고 기여하는 여러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 자아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시민들에게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루는 기회를 제공할 때만 그러한 자아가 형성된다.
P.125

대통령이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여 법률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그리고 공적으로 알리지 않은 채 "정당하게 제정된 법률"을 개조할 때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P.141

시민들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공적인 삶이 있을 때 커뮤니티는 가장 안전하다.
P.187

오 친구여, 그대 역시 민주주의란 것이 오로지 선거와 정치와 정당 명칭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말하겠네. 민주주의가 쓸모 있는 것은 그것이 태도에서, 사람들 간의 최상의 주고받음에서 그리고 종교, 문학, 대학, 학교에 대한 믿음에서, 모든 공적, 사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에서 꽃과 열매로 피어나기 때문이지. -왈트 휘트먼, 민주주의의 전망-
P.197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어린이, 노인, 정신질환자, 가난한 사람 그리고 노숙인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민주주의의 성실성도 고통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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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 참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유세에 후원을 하고, 선출된 공직자에게 어떤 쟁점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등 최소한의 행동을 넘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시민권의 거창한 형식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대신 우리는 사적 영역으로 숨어들어 오로지 자신의 개인 생활을 개선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고, 거기서 생겨난 공백을 비민주주의적인 힘이 채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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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자, 그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이견이 독기와 증오로 가득 차 있거나 폭력적이라면 시민사회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킬 것입니다. 의견에 강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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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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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적어도 그만큼의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언제쯤 깨닫게 될까? 우리는 왜 뭇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가? 국가의 위대함을 가늠하는 척도는 강자가 얼마만큼 성공하느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약자를 얼마나 잘 지지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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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 안에 있는 적에 의해서 분단되고 정복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를 갱신할 힘을 가진 국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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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다. 그 대신 법률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뜻대로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면서도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들에 대해 스스로를 가르쳐야 한다. 상호 이해를 향한 대화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폭력의 사용을 포함하여 우리를 위축시키는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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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비통함이 걸치고 있는 가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신념을 '적'에게 돌처럼 던지는 대신 고통의 근원을 서로 나눌 때, 우리는 마음을 열고 커다란 분리를 연결하는 통로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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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당시 외상을 입은 병사들을 가리켜 "군인들의 마음soldier's heart"이라고 불렀다. 군인들의 마음에 가해진 폭력은 자아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폭력은 전쟁터에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온전함을 짓밟을 때 폭력은 자행된다. 따라서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편리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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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우리 안에 아직 남은 자비심과 창의성의 공공재에 뿌리를 둔 정치적 삶을 건설해야 한다. 거기에서 형성되는 시민 공동체는 우리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통치자들이 그것에 책임을 지도록 붙들어놓기에 충분할 만큼 결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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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론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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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신의학자들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스트레스인) 디스트레스distress'와 (긍정적이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스인) 유스트레스eustress'를 구분한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긍정적인 스트레스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음을 더욱 광활하고 너그럽게 만들어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거부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물론 우리 사회도 위축되고 정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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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오는 긴장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위해 확장시켜야할 능력

1. 두려움 없이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차이를 넘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는지를 배우기

2. 자기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에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낯선 타자에 대한 공감을 심화시키기.

3. 우리가 믿고 아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붙들면서 동시에 다른 견해에 대해 귀를 열어놓고, 필요하다면 생각을 바꾸기.

4.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진실에 의심이 들면 언제든 대안적인 사실과 설명을 찾아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은 정보와 지식으로 나아가기.

5. 대화에 대해 파고들고, 질문하고, 탐구하고 매달리면서 그 과정에서 현실에 대해 더욱 충분하고 3차원적인 관점을 발전시키기.

6. 갈등으로 점철된 정치 현장에 들어가 복합적인 힘이 작용하는 역동성을 붙들어 시민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정부가 국민의 뜻에 책임지도록 붙드는 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7. 집단적인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증진하면서, 여러 생각이 겨루는 가운데 보다 나은 해결과 결정이 이뤄지도록 하기.

8. 여러 차이로 가득 찬 세계를 대면하면서 더욱 편안함을 느끼고, 다양성의 열매를 더욱 잘 만끽할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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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줄이자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고, 창조적 갈등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사회 변화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당파주의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문제다.
P.0

나서서 관여하는 대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죽기 시작하고, 과두정치 같은 것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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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의 신념이 아무리 기가 막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해도 나는 반대자들의 인간성을 부정하거나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반인 정치적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 공동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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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할 만큼 부나 권력을 지니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의 욕구를 보살피기에 충분한 부와 이해력을 지니게 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운명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상상한다. -토크빌-
P.0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의견을 분명하고 자신 있게 발언하는 것만큼 특별히 타인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하는 태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겸손함과 뻔뻔스러움의 마음을 갖추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민이 다수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P.0

우리는 공정하고 관대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 타인들을 질투하면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데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회피할 방법들을 찾기도 한다. 우리는 동료 시민을 신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회피할 방법들을 찾기도 한다. 우리는 동료 시민을 신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을 포함해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보았기에 낯선 사람들을 신뢰하기를 어려워한다. 인간의 마음이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은 아니라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첫 번째 토론장임에는 틀림없다. 운명적인 결과들을 함축하는 조용한 논쟁이 그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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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이끌려 소수의 시민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공동체의 직물을 난도질한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은 냉소 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무엇에도 관여하지 않고, 그러한 방관은 그 직물을 풀어헤쳐버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릭 그것을 다시 짜는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게 만든다.
P.0

우리 모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나 물건을 잃어버려 비통해 하는 사람들을 안다. 그들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패한 경제 때문에 집을 잃었고, 비인간적인 기업의 결정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으며, 아이들이 뭔가를 잘못 선택하여 떠나갔고, 친구와 가족이 폭력 또는 죽음에 희생되었다. 그러한 상실에 직면하여 어떤 사람들은 더욱 비통함에 빠지고 위축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비심이 커지면서, 어둠과 슬픔의 에너지 안으로 스며드는 통찰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의 아픔으로 손을 뻗친다.
P.0

나는 갈등이 없는 공공 영역을 상상하지도 염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없는 삶을 염원하는 것과 비슷한 환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만 갈등은 추방된다. 물론 갈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쫓겨날 뿐이고, 폭력이 강요하는 단일함의 환상이 그 자리를 채운다. 건강한 민주주의 속에서 공적 갈등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장려되어야 한다.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것은 창의성을 북돋아준다. 그리고 참과 거짓,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등을 둘러싼 여러 비판적인 질문에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해준다.
P.0

개인적 사회적 건강에 기여하는 마음의 습관을 키우고 싶다면 국가를 죽일 수도 있는 마음의 병의 숨은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중 가장 주된 것은 내적인 공허함, 강력한 개인적 정체감의 결여다. 그것은 거짓되고 해로운 "의미" 체계에 빠져들기 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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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서 가장 흔하고 민주주의를 좀먹는 두 가지 거짓 치료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가 그것이다. 그 두 가지 모두 개인 관계와 시민 공동체를 왜곡시킨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번영에 필요한 마음의 습관을 거스르는 쪽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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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에게 소비주의는 내적인 공허함을 달래는 선택의 마약이다. 우리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까닭은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정체감과 존재 가치를 세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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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공허감에 대한 두 번째 거짓 치료제는 희생양 만들기다. 이는 고삐 풀린 소비주의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개인과 공동체에 가져온다. 벤저민 프리드먼이 암시하듯이, 자기 문제의 탓을 낯선 타인에게 덮어씌우면서 위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병리 현상은 거의 매일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내면의 그늘을 인종, 사회계급, 종교,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면서, 자신에게 결핍된 것의 탓을 그들에게 돌린다. 다른 이들을 깔아뭉개고, 그들의 "열등함"을 배경으로 우리의 "우월함"을 주장하면서 정체감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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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아니다. 그 말은 poplic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사람들에 관련된"이라는 뜻이다. 그 단어의 변별적인 의미는 pubes(어른)라는 라틴어와 관련해서도 드러난다. pubes는 puberty(사춘기)의 어원이기도 하다. 원래 공적인 삶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여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돌볼 준비가 된 사람들의 활동 무대로 이해되었다. 나약하고 상처받기 쉬워서 사적 영역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은 뭔가를 책임질 수도 없고 공적인 삶의 특권을 누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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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private'이라는 단어가 privare라는 라틴어에서 왔다는 것, 거기에서 '박탈당한deprived'이라는 단어가 파생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인이 그토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생활이 고대에서는 성인들이 뭔가를 박탈당한 형태로 여겼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만일 기능적으로 완전히 성숙한 어떤 어른이 오로지 사생활만을 영위하면서 똑같은 사람들만 계속 만나면서 동일한 경험과 태도와 생각을 주고 받는다면, 그보다 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일이 어디 있을까? 고대에 완전히 사적인 사람을 그리스어로 idiotes-바보idiot의 어원이다-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여겼던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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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친구여, 그대 역시 민주주의란 것이 오로지 선거와 정치와 정당 명칭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말하겠네. 민주주의가 쓸모 있는 것은 그것이 태도에서, 사람들 간의 최상의 주고받음에서 그리고 종교, 문학, 대학, 학교에 대한 믿음에서, 모든 공적 사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에서 꽃과 열매로 피어나기 때문이지. -왈트 휘트먼, '민주주의의 전망'-
P.197

우리가 민주주의의 시민이 되고자 한다면 대중매체가 아닌 개인적 경험에 의해 규정되는 개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공간에서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뉴스를 접할 수 있다.
P.0

광란의 세계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한번, 집이나 사무실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끄고, 일을 내려놓고,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스스로를 침묵시키고, 자기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잠시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P.247

세상의 뉴스는 -천국 같은 것이든 지옥 같은 것이든 모두-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알수록 세상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다.
P.247

빛만이 아니라 어둠도 깃들어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면, 타인의 이야기도 충분하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타인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가지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실제 소식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 수 있겠는가?
P.250

영혼의 공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간단한 규칙 몇 가지

- 피정에서 제공되는 모든 것은 초대이지 요구가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반응한다.

- 다른 사람을 교정하거나, 조언하거나, 구제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모든 시도를 금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말하고 경청할 수 있다

- 서로에게 조언을 하는 대신, 우리는 상대방을 경청함으로써 그가 더욱 깊은 대화 속으로 들어가고 자기 나름의 내적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정직하고 열린 질문을 던진다.

- 우리는 침묵을 신뢰한다. 그것이 우리의 대화 아래 깔리고 대화 안으로 스며들도록 허락한다.

- 피정 기간에 이야기된 모든 것에 관해서 절대 비밀을 지킨다.
P.254

"나는 나의 그늘이면서 나의 빛이다. 그리고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다."
P.281

다른 사람이 내게 가하는 어떠한 처벌도, 자신이 왜소해지는 것에 공모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가하는 처벌보다 더 클 수 없다.
P.291

이 지구를 여행하는 동안 진정한 자아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죽어가는 것보다 더 깊은 영혼의 고통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보낸 잠깐 동안 최선을 다해 나 자신으로서 가족, 친구, 공동체와 세계 앞에 현존할 수 있었음을 알면서 죽는 것보다 더 깊은 영혼의 위로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P.295

폭력은 영적인 형태에서 물리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연민의 실패, 공감과 존중의 결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P.297

개인적, 정치적 삶에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모든 긴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실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부수고 희망을 무너뜨리는 현실 말이다. 그 간극의 다른 한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어지는 삶 말이다. 우리는 전쟁에 빠져 있는 세상을 보지만 평화의 순간을 알고 있다. 인종적, 종교적인 대립을 보지만 연합의 순간을 알고 있다. 불공정한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보지만, 풍요가 생성되는 물질적, 영적인 나눔의 순간을 봐왔다. 이런 종류의 가능성은 부질없는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목격해온 대안적 현실이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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