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 고대그리스어(헬라어)학습
깊이에의 강요
눈먼 자들의 국가 본문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문학동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작가는 작가의 존재를 걸고 말을 한다. 가수는 노래하고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들고 작곡가는 노래를 만든다. 안타까운 이 사건을 우리는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성토한다. 이 책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엮인 책이 아니라 해야할 말, 들려야할 질문들로 엮어진 책이다.
세월호가 기울다가 가라앉은 후, 불의의 사고도 아닌데 100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고귀한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나를 자책하고픈 강한 욕망이 시달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은 '나는 무고하다'라는 결백을 주장하고픈 마음과 늘 비례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나는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만큼 스스로 속죄하고픈 마음에 나는 쉽사리 자책을 택한 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지금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것이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4월 16일 이후 어떤 이에게는 '바다'와 '여행'이, '나라'와 '의무'가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할 것이다. 당분간 '침몰'과 '익사'는 은유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이 이제 우리의 시작을 대신할 거다. 세월호 참사는 상으로 맺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콘택트렌즈마냥 그대로 두 눈에 들러붙어 세상을 보는 시각, 눈 자체로 변할 것이다. 그러니 '바다'가 그냥 바다가 되고, '선장'이 그냥 선장이 될 때까지, '믿으라'는 말이 '믿을 만한 말'로, '옳은 말'이 '맞는 말'로 바로 설 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지금으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다.
김애란|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이들은 작가들이다. 기자도 아니고, 세월호 사건에 해명이든 뭐든 입장 표명을 해야하는 이들도 아니고, 이 사건을 누군가에서 설명을 해야할 의무가 있는 이들도 아니다. 그런 이들이 세월호 사건을, 이 시대를, 이 사회를, 이 국가를 조목조목 들여다보며 자신의 생각과 고민해야할 질문과 함께 지녀야할 책임감을 들려준다, 그 어떤 의무도 없는 이들이 말이다.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협력하는 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 진실은, 우리가 경제 성장이라는 분칠 속에 감춰둔 한국사회의 민낯일지도 모르겠다. 이 민낯을 마주 대하는 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어차피 내가 아는 한, 한국사회는 원래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혹은 안일하게도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그 얼굴이 점점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한 것만은 부끄럽다. 그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그런 착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진보에 대해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우리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으로 선출한 권력은 자신을 개조할 권한 자체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나아져야만 하며,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김연수|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그래서 나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이 비통한 세월호 사건을, 이 시대를, 이 사회를, 이 국가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는가? 너 자신에게, 너의 친구들에게, 만나는 신자들과 선후배 수녀님들에게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지,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또 무엇인지, 어떻게든 지켜야할 가치는 또 무엇인지"를 이제는 정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정리를 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으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
우리가 마음껏 가엽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상황에 우리 자신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할 때뿐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
진은영|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언젠가 애들을 데리고 겨울 여행을 떠났었는데 4명씩 짝을 맞추어 레일 바이크를 타는 체험을 했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석탄 레일 위로 철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체험이었는데, 앞에 앉은 두 사람만 페달을 밟아서 움직이는 거였다. 학사님과 보좌신부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탔기에 연장자(아....ㅠ)인 나는 뒤에 올라타고 덤으로 레일 위를 달리는 셈이었다. 한겨울 거센 바람을 맞으며 어쨌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니 숨차도록 페달을 밟아야 했는데, 뒤에 앉아 있던 나로서는 자리를 바꾸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 아무런 이득도 없는 선량함이여! 알 수 없던 생각들이여! 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서둘러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면서 나는 말한다. (……) 선량하게만 살다 떠나지 말고,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라!"
-도살장의 성 요한나-
농담처럼 살려달라 소리치며 "일부러 뒤에 타셨죠?"하던 보좌신부님의 말. 일부러 뒤에 탄 건 아니지만, 남자 둘 여자 하나라서 뒤에 탄 게 아니라, 극구 타기 싫다던 나를 태웠으니 무심한 마음에 그냥 뒤에 올라탄 거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착지로 가야만하는 그 바이크 위에서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안함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결국 내리기 전에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다는 한 마디를 던지고 내리긴 했지만, 삶이란 걸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같은 철도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누구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고 누구는 편안하게 쉬면서도 갈 수 있다는 것. 억울하다고 페달을 멈출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 자신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에 쉽사리 멈추지 못한다는 것. 애초에 모두가 페달을 밟도록 만들어진 자전거가 아니라면, 서로의 자리를 바꾸지 않는 이상은 ...
매일 당도하는 소식으로 내상內傷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정치권에도 우리의 일상에도 사람을 상처입히는 몰염치와 파렴치는 만연하고, 그게 별다른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상처입지 않으면서 보답받고 응답받는 신뢰 같은 거, 나는 믿지 않겠다. 조금 더 상처입어도 좋다. 그것을 감내하고 믿어보겠다.
황정은|가까스로, 인간
그래서 쉬지도 못하면서 숨가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비해 너무나 편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조만 다를 뿐이지 누구는 마차 위에 있고 누구는 마차를 끌고 있는 셈이다.
세상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명 질문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사람 자리로 슬쩍 바꿔 앉는 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배명훈|누가 답해야 할까?
세상은 그렇게 역설적이다. 경쟁을 더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이제 경쟁 좀 덜해도 되는 사회로 바꿉시다!"하고 외치고, 진짜 경쟁에 돌입하면 금세 나가떨어질 것 같은 사람들이 "이 빨갱이들이 무슨 소리야, 자유경쟁이 최고지!"하면서 그들을 매도하기도 한다. "너는 살 만하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나는 당장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질타를 몇 차례 듣다보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공재를 제공하겠다는 각오가 금세 무색해져버리기도 한다.
배명훈|누가 답해야 할까?
우리는 그렇게 버텨내고 있다. '버텨내기'에 대해서만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라는 말 자체를 지탱하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내가 이 글에서 '우리 공동체'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존경받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사라져간다.
배명훈|누가 답해야 할까?
내가 페달을 밟고 있는 사람인지, 누군가의 노동으로 편하게 앉아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우연히 그 레일 바이크 뒷자석에 올라 탔듯이 페달이 있는 자리와 페달이 없는 자리가 애초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님을, 누군가의 호의로 뒷자석에 앉았다 하더라도 기꺼이 자리를 바꾸어줄 줄도 알아야 함을, 적어도 내가 누군가의 노동으로 거저 살아가고 있음을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함을...
『안티고네』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내 직접적 행동과 무관하며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책임은 반드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내가 무심히 고개를 돌린 사이 자행된 잘못들과 이 때문에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는 윤리적 행위와 연관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며, 잘못을 따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자, 신의 법을 받드는 일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다.
김서영|정신분석적 행위, 그 윤리적 필연을 살아내야 할 시간
총회를 하면 후렴구절처럼 되풀이 되어 나오는 말이 '시대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도자로서 시대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자는 말인데, 과연 응답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우리 마음대로 뒤좌석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따져 물어야할 때다. 수도회만이 아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도 나는 따져 물어야 한다. 남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나는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에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연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신형철|책을 엮으며
'雜食性 人間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0) | 2014.11.21 |
---|---|
아만자 (0) | 2014.11.19 |
투명인간 (0) | 2014.10.17 |
그의 기쁨과 슬픔 (0) | 2014.10.16 |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0) | 2014.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