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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싸가지 없는 진보 본문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얼마 전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를 봤다. 뒷목 잡고 한숨 내쉬며 뒤늦게 찾아서 보고 있는 나를 수도 없이 후회하면서도 끝까지 보긴 했지만, 제1야당의 당대표를 한다는 사람들의 평균 수준이 정말 이 정도인가 싶어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들이나 그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그 해결점은 무엇인지 나는 정말이지 답답하고 궁금했고 어떻게든 그 대답에 가까이 가고 싶어 이 책을 골라들었다.
무뇌증. 유권자의 의식 성향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정당의 권력비판 기능과 범위도 변화했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과거 관행만 답습하는 등 뇌 기능을 '관성'으로 대체했다는 것.
나는 이 두 가지 병을 포괄하는 제3의 병명을 선사하고 싶다. 그건 바로 '싸가지 결핍증'이다. 싸가지가 없기 때문에 민심을 읽지 못하고 관성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나의 총평은 이것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
'싸가지'라는 단어에 대한 논란부터 시작하여 한동안 잡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읽을만 했다. 상황과 문제점을 성찰, 파악하고 해결, 대안점을 마련하는 노력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도 없거니와 그럴 수도 없다. 이 책은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현 시점에 있어 꼭 되짚어봐야할 문제를 다뤘다고 본다.
게다가 나에겐,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은 싸가지 없는 진보만을 위한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편, 네 편 갈라져 싸우는 게 어디 정치판만의 일인가.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지)면 가차없이 상대를 공격하고 막다른 곳으로 몰아세워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당 안에도 널리고 널렸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황희 정승의 자세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한때는 황희 정승의 태도야 말로 비겁함의 또다른 표현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음을, 이것 또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저것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반드시 관철해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고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면, 당장 들리는 소리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말. 정중함마저 상대에 대한 기피의 또다른 표현이었음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심하면 신앙마저도 '내 편'끼리만 통하길 바라니, 하느님의 복도 '내 편'에게만 내리기를 기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싶어 생각만해도 씁쓸하다.
진보와 일베를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흥미로웠다. "선동만 있을 뿐 팩트는 없는, 표현의 자유만 있을 뿐 책임은 없는" 사람들. 어떤 일베 회원은 "좌파들은 스스로를 '자신만이 정의', '깨어 있는 시민', '우파는 수구꼴통'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피해의식은 역공을 시작했고 "계속 당해왔던 이 공격은 이제 부메랑이 되겠다. 당신들이 신성시하는 김대중을 까겠다, 노무현을 까겠다, 민주주의를 까겠다. 너네들의 이중성이 꼴 보기 싫으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더 악랄하게 그리고 당신들의 무적의 무기인 표현의 자유로 공격하겠다."고 결심, 선언하는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런 이유가 "그들의 호남인에 대한 능멸과 저주"를 어떤 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뒤집어 쓴 괴물 가면에 따라 내가 괴물이 되어가고 나의 괴물 가면을 쓰고 괴물처럼 행동하는 나를 대하는 이들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현상. 과연 "누군가를 혐오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아무리 싸가지와 도덕과 화합을 강조하더라도 분노할 땐 뜨겁게 분노해야"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순문학이나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받는 작품은 꼬박꼬박 챙겨봤어도 KBS에서 8시 반마다 하는 일일연속극은 오그라들어서 절대 못 보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진보가 안고 가야 할 대상은 도리어 연속극을 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가. 연속극 시청자의 눈으로는 진보세력이 오합지졸에 갈등을 조장하는 패륜아들처럼 보엿을지 모르겠다. 빤해 보이는 일일연속극의 시청률이 왜 높은지, 대중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이해하는 게 정치에서는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공이 울타리 밖을 넘어섰을 때 환영받을 수 있는 건 야구에서만이 아니다. 진보정치에서도 그런 짜릿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길 바란다."
사업을 하건 학생을 가르치건 악기를 연주하건 바이러스를 연구하건 사제이건 경찰이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지식의 바탕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으려면 우선적 성찰은 필수다. 이 난리 와중에 성찰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준 저자가 얼마나 고맙던지.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볼줄만 알았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격한 물살에 휩쓸린듯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한쪽으로 쏠리진 않았을텐데 싶어 마음이 불편하다.
누구 말마따나 종교인으로 살아가면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직함'의 무게를 가늠해볼 때마다 그리 맘이 편치는 않다. 다만, 그 무게가 타인이 아니라 나만을 누르고 다그치기만을 바랄 뿐. 이 책 역시 타인을 다그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를 다그치기 위해 쓰였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책이 미치는 영향도 우리 모두를 다그치는데 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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