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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갱신 서원에는 우아한 그림이 그려져있는 서원장이 아니었다.그냥 백지 한장.연필로 일일이 눈금을 그려서 줄로 그었다.첫서원을 할 때는 무슨 양피지에 성서 필사를 하는 고대 수도자 같은 맘으로 글을 썼었다. 그렸었나?하여간 그때는 멋있는 서원장 덕분에 서원장의 내용보다는 글씨를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컸었지..근데 이번 갱신 땐... 백지를 채워가는 내 글씨가진실이 되길 바랬다...제대 앞에서 하느님과 성인들 앞에서 읽어내려갈내 서원장의 글자 하나하나를가슴에 새기고 싶었다.제대 위에서 온전히 봉헌되신 예수님처럼서원한대로 온전히 봉헌되고 싶었다.
수련자 2년 동안 베란다에 나가서 수도없이 올려다 본 밤하늘이다.갱신 피정하면서 다시 이 베란다에 나가봤다.이 밤하늘을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지.여기에 서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애절하게 들린다...내가 이렇게 수련기를 살았구나 싶었지...
성소자 모임방인 다락방에 걸려있는 사진이다.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피할 수 없는 고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은 건내 수련기 시작의 목표였고,내 수련기 8일피정의 주제였고,내 첫서원 때 드린 기도였다.
장장 2주일간의 시험기간을 끝내고(장하다, 김희경!!)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미사 마치자마자 삶은 감자 2개로 아침을 해결하며(~ing) 서둘러 농장으로. 7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과거 7시는 내게 새벽이었는데ㅠㅠ) 햇빛은 대단했다. 햇살이 뜨거워 농장 가는 길 내내 아래만 쳐다보다 어느새 고무신에 눈길이 머물었다.230사이즈의 하얀 남자 고무신. 입회할 때 사온 거다. 성소담당 수녀님께서는 엄마랑 장보는 사람은 고무신을 따로 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무리 하느님께 시집간다지만, 꽃신도 아니고 여자고무신도 아니고 허연 남자고무신을 입회물품으로 준비한다는 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릴거라고...나야 함께 갈 엄마도 안계셨으니, 혼자서 떨래떨래 서문시장에 가서 별 슬픈(?) 마음도 없이 사긴 샀었지. ..
(시리아 마르무사 수도원) 수련소 시절, 여름철 저녁이 되면 더위를 피해 어둡고 서늘한 수도원으로 종종 박쥐가 들어오곤 했다. 긴 복도로 사각형을 이룬 3층 건물 안으로 일단 들어오고 나면 모서리 외에는 창문을 찾기 어려워 제 힘으로 다시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 미친듯이 복도를 날아다니며 나갈 곳을 찾는 박쥐와 일부 수녀님들의 비명소리가 섞여서 '혼비백산'이란 사자성어의 진정한 뜻을 깨닫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숱한 여름날의 기억들. 어느 날, 어김없이 박쥐가 찾아들었고 시원한 쉴곳을 찾던 어린 박쥐 한 마리는 흰옷 입은 여자들의 비명에 둘러싸여 날아갈 수 있는 구석이란 구석은 다 뒤지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박쥐를 잡아 밖으로 날려보내야만 평화로운 밤이 찾아올 게 분명했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