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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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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contemplativa

제 도반을 소개합니다

하나 뿐인 마음 2013. 2. 4. 09:15


장장 2주일간의 시험기간을 끝내고(장하다, 김희경!!)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미사 마치자마자 삶은 감자 2개로 아침을 해결하며(~ing) 서둘러 농장으로. 7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과거 7시는 내게 새벽이었는데ㅠㅠ) 햇빛은 대단했다. 햇살이 뜨거워 농장 가는 길 내내 아래만 쳐다보다 어느새 고무신에 눈길이 머물었다.

230사이즈의 하얀 남자 고무신. 입회할 때 사온 거다. 성소담당 수녀님께서는 엄마랑 장보는 사람은 고무신을 따로 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무리 하느님께 시집간다지만, 꽃신도 아니고 여자고무신도 아니고 허연 남자고무신을 입회물품으로 준비한다는 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릴거라고...

나야 함께 갈 엄마도 안계셨으니, 혼자서 떨래떨래 서문시장에 가서 별 슬픈(?) 마음도 없이 사긴 샀었지. “아저씨, 남자고무신 230도 있나요?” 그렇게 나와 처음 만난 내 고무신.

여지껏 보세운동화라는 운동화는 하나같이 내 뒷꿈치를 물었었는데, 희안한 것이 이 고무신 하나만큼은 내 발에 정말이지 꼬옥 맞았다. 고무신이 맞지 않아서 지원자 동안 고생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나는 고무신을 신은 첫날부터 아무탈이 없었다. 게다가 비 오는 날, 털래털래 신고 나다니다가 들어오는 길에 수도꼭지에 대고 몇 번 털고 나면 어느새 깨끗해지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겨울에는 추워서 신기가 어렵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기까지 하니. 5년 동안 나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준 고무신이 오늘따라 얼마나 고마운지.

밖에 살았을 때는 신발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공을(돈을?) 들여 신고 다녔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허연 남자고무신이 그지없이 고맙다. 수도 삶을, 가난의 삶을 나의 가장 밑바닥에서 실천하고 있는 친구.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내 운동화는 나이키이다. 하얀 나이키 운동화. 이걸 신고 소풍이라도 갈라치면 마음 한켠이 아프다. 무슨 얘기냐고. 부끄럽다는 거다. 내가 나이키 운동화를 부끄러워할 줄을 정말 몰랐지. 기왕 산 운동화를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밖에서는 그저 예쁘고 세련된 운동화가 이제 나에겐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운동화는 제나름의 역할이 있다. 나를 꼬집어주며 ‘나를 보고 언제나 자신을 뒤돌아 볼줄 알아야 해! 허황한 껍데기는 벗어 던지고 진실된 마음 하나만 가지면 된다는 걸 깨달아야 해!’라고 말해주니깐. 나란히 놓고 보면 고무신도 운동화도 비슷하다. 푸른빛이 도는 허연 고무신이랑 하얀바탕에 하늘색 상표가 그려진 운동화. 둘다 내모습이다. 둘다 내 가는 길에 발 헛디디지 않도록 도와주는 도반 중의 도반이지. 고무신 얘기 끄~읕. 


...오래 전에 쓴 글을 옮기는 기분이 참... 내가 이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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