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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0/11 (27)
깊이에의 강요
김소영 지음. 유유. '내'가 어린이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가 어린이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짐작했던 것과 조금 다은 내용이긴 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함께 잘 살아가는 것도 이래야 하지 않나 싶었다. '내가 잘 사는 법'도 중요하지만, '네가 잘 살도록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네가 잘 살도록 내가! 내가 잘 살도록 네가!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어느 날, 내가 앞 세대로부터 받은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더 이상 배울 것은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들과 싸워야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다 새삼 놀랐다. 어린이에게 나 역시 그런 ‘앞 세대’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를 뜷고 자라는 어린이는 무엇보다 자신의..
데이비드 스몰 그림. 사라 스튜어트 글. 이복희 옮김. 시공주니어. 씨앗을 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더디지만 한 철만으로 끝나지 않을 희망을 품는 것. 나만 보는 꽃이 아니라 내가 떠난 후에도 누군가는 보게 될 꽃을 기꺼이 심는 것.
이상교 시. 한병호 그림. 신동일 음악. 미세기. 이사를 떠난 후 남겨진 집에 대한 이야기. 다락과 툇마루, 문지방과 댓돌이 울고 미닫이문은 속울음을 운다. 마지막까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본 대문... 사람은 아니, 나는 어찌 이리 나를 품어준 것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걸 밥먹듯 하는 건지. 알맹이에 마음을 두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고, 남겨두고 떠난 적은 쉬이 잊고 남겨진 것만 품고 사는구나 싶었다.
백지혜 지음. 보림. 화집을 보는듯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식물도감을 보는듯 하기도 한 백지혜 작가의 그림책 두번째. 페이지마다 노랑나비가 날아다닌다. 요즘 세상에선 애써 찾아야만 볼 수 있는 나비지만,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나비 한 마리라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시선은 나비를 따르게 되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이런 노랑나비 한 마리가...
스콧 한 지음. 오영민 옮김. 바오로딸. 이 책이 예비신자나 신영세자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된다는 얘기는 진즉부터 들었지만 읽어볼 생각을 못했었는데, 성당에 앉아 짬짬이 비는 시간에 읽을 책을 찾다가 집어들었고, 아주 좋았다. 아기 때문에 성당을 다닌 나로서는 예비신자들을 위한 교리를 하면서도 그들에게 딱 맞는 언어로 쉽게 풀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미 나의 언어 세계는 기조가 가톨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콧 한 박사는 개신교 목사님이었는데 그가 개종한 이야기는 참 특별하다.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로 넘어온 사람이 발견한 가톨릭의 보물에 대해 쉬운 말로 핵심을 전달한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더 쉽겠구나, 이런 설명이 더 필요하겠구나 하면서 또 다른 시선을 배웠다. 무..
조미자 지음. 핑거. 자신의 리듬을 잘 알고 그 리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어떤 날은 빠르게, 또 어떤 날은 조금 느리게, 누군가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용기가 난다. 내가 딛고 선 길, 내가 디디며 나아갈 길, 어둡고 아늑한 혼자만의 공간까지. 다쳐서 생긴 빈 공간을 메우려고 너무 아등바등 했구나, 싶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은채 다친 날 위로하려고 누군가 보내준 문자를 생각해냈다. 수녀님, 느린 천사로 살고 계시는지요... 그래, 느린 천사로 살 줄도 알아야겠지. 그게 지금 나의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