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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4,18-22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4장

마태 4,18-22

하나 뿐인 마음 2013. 1. 13. 22:11

마태 4,18-22 예수님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

 

애니어그램 책을 보다보면 4번 유형에 관한 설명 중에

'죽을 때까지 자아를 찾는다'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나같은 사람의 유형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 이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등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경향이 크다.

 

덕분에 나는 수도자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부터 시작하여

지금 내 소임의 의미, 내 부르심의 의미 등등을

수시로 찾아 헤매곤 한다.

늘 뭔가 깨닫길 바라는 강박이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이 내게 주는 바는 크다.

아무리 훑어봐도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 네 명의 어부들에게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겠기에 그렇다.

외적 조건이든 내적 조건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물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도, 손질하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이미 부르심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곧 버리고' 떠날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부족한듯 하다.

 

부르심의 이유는 역시...예수님께 있었다.

그 명확하지 못하고 모호한 이유라고 생각했던 '의미'가

'예수님'이라는 분명하고도 유일한 의미였던 것.

 

내 지난 날을 되돌아 보더라도 그렇다.

부르셨기에 가는 것이라 결론내리고 나면 버림은 당연 수순이었다.

내가 생의 의미를 나 자신 안에서만 발견하고자 찾아 나선다면

죽을 때까지 헤매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나를 찾아 헤매는 것 역시 제게는 세속에 눈길을 주는 것입니다...

 

대림시기동안 '우물'일기장 꼬박꼬박 쓰려고 노력 중인데... 잘 될라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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