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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그들은 어부였다(마태 4,18-22)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4장

그들은 어부였다(마태 4,18-22)

하나 뿐인 마음 2015. 3. 14. 07:29

 

 

우리끼리 주고 받는 말 중에 수녀가 되어서 어릴적 꿈을 이루고 산다는 말이 있다. 수녀가 되려고 마음 먹었을 땐 누구나 한번쯤 가졌던 자신의 어릴적 꿈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물론 시종일관 수녀가 되고 싶어해던 소녀가 아가씨가 되어 입회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서원을 하고 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릴적 단순하면서도 명징했던 꿈을 살고 있더라는 말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교리시간을 즐겁게 준비하는 수녀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던 꼬마 아가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식사당번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북한 이주민 자녀들을 돌보며 현모양처로 살아갈 수도 있고, 수녀가 되어 간호사가 되는 사람도 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의 꿈은 책방 주인 혹은 다큐멘터리 나레이션 작가였지만  그보다 더 어릴적 꿈은 아프리카에 가서 아픈 사자들을 고쳐주는 사람이었다. 수의사도 아니고 서커스 조련사나 동물원 사육자도 아니고 넓디 넓은 들판에 트럭을 몰고 다니며 아픈 동물들을 찾아서 고쳐주는 사람. 자유롭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키우고 길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가가 도움을 주는 사람, 동물들은 동물들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고 나 또한 나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말이다. 서로의 본성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되, 잊거나 외면하지 않는 삶. 감수해야할 위험과 홀로 맞서야할 외로움... 그밖에 많은 것들이 광야처럼 펼쳐질 삶이겠지만, 인생 중에 그 정도 광야를 거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녀로서 살아가는 지금의 나 역시 어릴적 TV 앞에 앉아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가슴에 품었던 그 꿈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하신다. 그들은 어부였고, 예수를 따라나선 후에도 어부였다. 예수는 나의 본성까지 바꾸려 하지 않으신다. 진흙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되풀이하여 물레를 돌리는 옹기장이처럼 나를 빚고 또 빚으신다.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흙을 내던져버리지 않고 빚고 또 빚으신다(예레 18,3-5). 난 진흙덩이에서 투박한 그릇 형태로 변해가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 그릇의 모양을 서서히 갖추어 나간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더 이상 술을 내지 못하는 물독을 버리지 않고 물독에 물을 담으시되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이(요한 2,1-11) 거칠고 투박한 우리들을 밀쳐두지 않으시고 또 빚고 또 빚으시며, 다시 물을 담고 그 물을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간 예수님의 제자들이 눈부신 태양 아래 호숫가에서 처음 예수를 만났던 그 날도 그들은 어부였다. 가난하고 솜씨는 변변찮았을진 몰라도 그들은 어부였다   

 

수도자가 되어 당신 뒤를 따르라 부르시는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알아차렸던 그때도 난 서툴고 한참 모자란 수도자였고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내 삶 어느때를 되짚어봐도 "그는 수도자였다."라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난 수도자였고 지금도 그렇고 죽어서도 난 수도자이길 ... 오늘도 난 꿈꾼다.

 

아, 지금의 나는 후배 수녀님들 맛있는 밥 차려주고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모자란 기도를 채우며 하루하루 하느님 곁으로 다가서는 할머니 수녀님이 되고 싶은 꿈 하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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