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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14,22-33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14장

마태 14,22-33

하나 뿐인 마음 2013. 1. 13. 21:37

거센 바람을 보고 그만 겁이 나서 물에 빠지기 시작하며… (14,30)

오늘 복음은 필요한 것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하는 복음인 것 같다. 크게 두 부분(22-27절과 28-33절)으로 나누어 보았다. 각각은 두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은 산에 홀로 계신 예수님(22-23절)과 바다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24-27절)이고 뒷부분은 바다에서 베드로와 예수님이 만나는 장면(28-31절)과 사람들과 예수님이 함께 있는 장면(배 안 :32-33절)이다.

 

◇ A - 22-27절

       - 22-23절 … a

       - 24-27절 … b

    B - 28-33절

       - 28-31절 … c

       - 32-33절 … d

 

◇ 각 장면은 하나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a : 예수님 홀로 하느님과의 만남

b : 역경 중에 다가오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c : 역경을 딛고 예수님께 다가가는 여정에서의 만남

d : 배 안에서의 모두의 만남

 

◇이 네 장면의 순서대로 예수님의 호칭도 바뀌고 있다.

예수 → 유령 → 주님 → 하느님의 아드님

 

A부분에서의 문제점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데에 있고, B부분에서의 문제점은 믿음의 부족이다. A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편으로 다가오시지만, B부분에서는 베드로(사람) 편에서 예수님을 향해 나아간다. A부분과 B부분을 구분하는 건 행동방향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다가오실 때는 우리 편에서의 ‘알아보지 못함’이 문제이고, 우리가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는 ‘믿음의 부족’이 문제라는 것이다.

 

a :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 우리를 먼저 떠나보내시는 시간이 있다. 우리 편에서 보자면, 예수님께서 계시는 산과 동떨어진 바다 위에서 풍랑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처럼 우리도 홀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져야 하는 때가 있다. 인생 여정에서 지치는 순간이 왔을 때가 특히 그러하다. 지금 예수님은 요한의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외딴 곳에 가시려 하다가 당신에게 몰려온 사람들을 위해 큰 기적을 행하시고 지친 상태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해 무엇보다 기도(=힘)가 필요하셨다. 자잘한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만나야 하지만, 모든 것 다 끊어버리고 오직 홀로 서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때는 모든 사람, 모든 사건, 관계, 추억, 걱정거리, 기쁨, 욕구… 모두를 떠나보내야 한다. ‘재촉하여’(22절) 헤쳐 보내야 한다. 나 같은 신분의 사람은 이런 시간을 매일, 수시로 마련해야 한다. 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기에, 하느님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기에 하느님 아니고서는 힘을 길어 올릴 수 없는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b : 인생에는 역경이 없을 수 없다. 내 뜻과는 달리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서 마주 오는 파도를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곧잘 ‘내 인생에 험한 일이 아예 없었으면’하고 바란다. 게다가 밤이 깊었다. 밤 사경은 새벽3-6시 사이인데, 해뜨기 전의 시간이다. 새벽이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우리는 ‘내 인생에 밤이 없기를’하고 바라기도 한다. 이때 예수님께서 다가오신다. 우리가 겁내는 호수 위를 걸어서 성큼성큼 오신다. 풍랑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들 곁으로 어둔 밤인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걸어오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말이라는 게 “유령이다?”이라니.

 

c : 베드로가 ‘주님’이심을 알아보았다. 물 위를 걸어서 기진해 있는 자기들에게 오실 분은 주님뿐이심을 베드로는 알고 있는 것이다. 28절을 가만히 읽어보면 베드로가 어떻게든 예수님 곁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면서 멋있고 싶다는 것. 제자들은 하나같이 ‘최고’이고 싶어 했고 ‘한자리’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했다. 어느정도 예수님을 알아뵌 사람들이 이렇다. 여기엔 나도 물론 포함된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 갈망을 느끼지만 겸손한 마음으로(=낮아지는 길로) 가는 방법은 잘 모른다. 안다 해도 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니, 믿음부족이다. 예수님 따라 길을 나선 이들이 무엇을 보고 걸어가야 하는지 말해준다. 베드로는 예수님만 바라봐야 했다. 근데 거센 바람에 잠시 눈을 판 순간, 빠지기 시작했다. 또 비명을 지른다(26절, 30절). 이번엔 구해달라고 지르는 비명이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immediately!!(이 단어는 오늘 복음에서 3번 나온다 22,27,31절)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는 예수님. 이때 예수님 눈빛이 어땠을까? 물 위에 서 있는 당신을 보지 못하고 어느새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베드로를 향한 눈빛. 수도자는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이란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하느님 말고 다른데 눈돌릴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아무리 좋은 것들이라 해도 하느님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것은 한눈파는 것에 불과한 것! 사부님은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너무나 이것저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믿음이 약한 사람!” 아무리 작게 속삭인다 해도 이 말은 무슨 천둥소리처럼 내 가슴을 강타한다. 행위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다. 아무리 기도에 열심한다 해도 아무리 봉사, 희생에 열심한다 해도,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모두가 인정하는 성인(聖人)이라 해도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없이는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그냥 착한 것만으로는 안된다. 일단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길을 가는 이상 ‘믿음’이 없이는 안된다. 믿음은 역경의 시간에 ‘조용히 기다리게’ 한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시련들에 있어 많은 순간, 조용히 인내하지 못했다. 비명을 질러봤댔자 빠지기는 매한가지인데, 손을 내밀어 주셔야, 그 손을 잡아야 빠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했으니… 조용히 인내하는 법. 오시는 주님을 고요히 맞이하는 것. 그 어떤 거센 파도와 바람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믿음. 내겐 믿음이 필요하다.

 

d :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 바람이 그치는 순간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이다. 아니,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아는(믿는) 순간이다. 드디어 고백한다.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떨어져 있던(24절)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실 그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과 함께 있다. 하지만, 곧잘 한눈을 판다.

필요한 것 한 가지는 믿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는 길, 무엇을 보고 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오직 한분만 바라보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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