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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5,20ㄴ-26 들고 간 예물이 아니라 제단 앞에 선 나 자신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5장

마태 5,20ㄴ-26 들고 간 예물이 아니라 제단 앞에 선 나 자신

하나 뿐인 마음 2026. 2. 27. 08:38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0절)
스스로를 의롭다 여겼던 바이사이와 율법학자들은 꽤나 억울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은 세세한 규칙까지도 다 지켰는데, 말만이 아니라 행동도 다 했는데 ‘부족하다’고 하시는 예수님한테 얼마나 서운했을까. 때론 ‘틀렸다(다르다 아님)’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한테 얼마나 항변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깊어졌을까.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은 사람은 있었을까. 하느님은 기쁘셨을까. 그들이 율법 규정을 일일이 완벽하게 지킬수록, 남는 것은 ‘율법을 완벽하기 지키는 나 자신’뿐이지 않았을까.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21-22절)
예수님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 안에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 ‘바보’라 하고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시키셨다. 살인은 하지 않았다 해도 점점 죄는 무거워지고(재판→최고의회→불붙는 지옥) 살인의 무게와 진배없다. 예수님은 무자비한 화, 언어폭력, 혐오와 차별이 살인이라고 얘기하시는 중이다. 미처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속에 든 것이 결국 향하는 지점까지 책임이 있다고 하신다. 그래, 살인하지 않는 세상은 죽이지 않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지 세상이지.

묵상을 하다보니 그간의 내 말이나 속에 담아 두었던 기억들이 그리 떳떳하지 못해 부끄러운 후회를 하는데, 뒷부분을 묵상하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3-24절)
흠없는 완벽한 예물을 들고 갔더라도 예수님은 ‘나’를 받으신다. 들고 간 예물이 아니라 제단 앞에 선 우리 자신을 받으신다. 완벽한 예물이 아니라 ‘흠 있는 우리 자신’을 받으신다. 제단 직전까지 갔더라도 돌아나와 형제와 화해할 줄 아는 우리 자신을, 흠없는 우리가 아니라 흠을 인정할 줄 아는 우리를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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