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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설득 본문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윌북.
이번에 새로 번역하고 묶여 나온 윌북 첫사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현대적인 번역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한다)으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대를 하고 그/그녀는 ‘그’로 통일하고, 여류작가가 아니라 작가로, 유모차는 유아차로, 하녀는 하인으로 번역하는 등 시대적 상황은 살리면서도 차별적인 요소는 제거해서 일단 표현 자체가 마음에 걸리는 곳은 없었다. 그/그녀 구별이 내게도 익숙한지라 처음엔 ‘그’가 누구인지 헷갈려서 잠시 멈춰야 했지만 읽다보니 헷갈릴 것도 없었다. 중간을 넘어가면 이 표현이 ‘당연하다’고도 생각되니, 이런 번역에 들이는 노력은 또 얼마나 필요하고 값진가.
그건 그렇고 이런 종류의 문학 소설을 읽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언젠가부터 사랑을 말하는 소설을 읽기가 어려웠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영화 <닥터 지바고>를 견디는 것도 힘들었고, 사실 <파친코>를 읽다가도 당연히 아내가 있는 줄 알면서도 선자가 자기와 만나는 줄 알았다는 한수의 말에서 책을 덮고 말았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사랑 소설이라면 으레 들어가는 그 흔한 장면도 없고 생각지도 못할 배신이나 재난도 없고 밋밋한 술수나 뻔한 질투, 조금 답답하다 싶고 유치한가 싶기도 한 미성숙한 캐릭터들을 비집고 주인공들이 사랑으로 오히려 정공을 가한다고나 할까.
한참 전부터이다, 모든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너무 시시했고 사랑 없으면 재난을 통과하지도, 원수를 갚거나 역경을 이겨내지도, 권리를 되찾거나 불의한 사회에 맞서지도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사랑에 빠질 필요가 없다 해서 모두가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니 이런 책도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다 싶다. 게다가 변치 않는 불굴의 사랑보다 질투와 오해에 흔들리기도 하고 상대를 미워했다가 자신을 미워했다가 하면서 민낯으로 울고 웃는(심지어 본인들은 애써 숨겼다) 주인공들이 오랜만에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인 오스틴에게 ‘설득’ 당했다고나 할까.
개츠비 완독도 몇 번을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나이가 된 건가.
서로에게 변함없는 애정이 있다면, 오래지 않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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