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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세속성자 -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 본문

雜食性 人間

세속성자 -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

하나 뿐인 마음 2021. 5. 11. 22:54

양희송 지음. 북인더갭.

‘절대 하지 말라’와 ‘우리 함께 하자’의 차이를 많이 생각하며 읽었다. 금지와 청유는 분명 다르고 둘 다 필요하지만 이 둘이 각각 불러오는 힘과 그 과정과 결과 역시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독려하는가.

맞는 말도 많고 생각해 볼 것들도 정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던 책. 책의 기조가 꽤나 부정적으로 다가왔었다. 아니라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고 싫어서 아니라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불편했다. 청아람 아카데미는 근래에 책 때문에 알게 되었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대를 품고 시작한 책이 놓치고 싶지 않은 내용이 많은데도 읽을 수록 기분이 별로였다. 게다가 이분 이름은 처음이라 결국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수년간의 불륜으로 대표 자리를 내놓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다. 이런 문제로 무너지는 경우가 왜 이렇게도 많은가.

이 책도 그 와중에 나온 책이다. 책을 읽으며 가톨릭에 대해서는 단순히 막연한 적대감 정도가 아니다 싶었던 것도, 수도생활에 대한 비아냥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도 다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바로잡아 주고 싶은 내용이나 되묻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서 이 책을 블로그에 올리는 게 맞을까도 고민했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과오가 글을 가릴 수는 있어도 글 자체를 오류로 만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일.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 책에서 그렇게도 부정했던 가톨릭 성사의 사효성(事效性)의 논리는 그의 책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고, 하느님께서는 이분 앞에 새 길을 열어주시겠지.

p.9
"저는 성벽 내의 불신 혹은 맹신을 드러내고, 성벽 바깥에서 성심으로 신앙하는 삶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인을 ‘세속 성자a secular saint’라는 개념으로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삶을 ‘굴욕’이라고 느끼는 이들을 불러내고자 합니다."

p.32
"성도들이 교계 내부의 담론만 따라가다가는 신앙적으로 괴멸될 수준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예수 믿는 것인가?’란 질문에 흡족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p.46 ~ p.47
"거룩에 이르기 위한 수단인 제사가 그 제사를 위해 온갖 부조리를 양산해내면 본질은 변질되고 맙니다. 열심히 율법은 지키는데 세상은 하나도 거룩해지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이렇게 초래됩니다. 제의적 방법이 거룩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p.47
"최고의 선의를 갖고 수행할지라도 제의적 방법으로는 거룩에 이를 수 없습니다. 부정한 것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시행되는 정결법은 사회적으로는 부정한 대상을 설정하고 이들을 내몰아감으로써 새로운 차별과 혐오를 배양합니다."

p.52
"오늘날 기독교는 자신들을 심각하게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고 말하다보니 정작 자신들이 내건 기준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형편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위선적이란 평가를 받게 됩니다."

p.59
"우리가 배운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함으로써 거룩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이 우리를 보호하사 ‘세계 안의 거룩’을 가능하게 한다는 고백입니다."

p.81 ~ p.82
"교회에서 진정 가르쳐야 할 내용은 ‘세상을 저버리고, 교회로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도들이 어떻게 일상의 시공간 속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일깨우고 독려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p.83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피와 살과 뼈로 된 몸, 즉 공간성과 한평생으로 한정된 시간성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땀 흘려 노동하며 삶을 영위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부정하고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성과 공간성을 최대치로 살아냄으로써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p.83
"참 신앙인은 곧 참 인간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건이든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거룩은 ‘세계 내적 경건’이지 ‘세계 이탈적 경건’은 아닙니다."

p.91
"교회사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개혁자들은 당대의 교회가 부와 명예를 좇을 때, 가난과 조롱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어본다면 대답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

p.94
"기독교 신앙은 이 땅의 삶을 저급하게 여기고, 초월적 이데아의 세계로 비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찰나와 찰나에서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삶을 붙잡습니다. "

p.137
"기도는 자기확신의 강화를 위해 쓰일 수 있습니다. 기도의 양이 많고, 깊은 이들이라면 이런 맹점에서 성숙하게 벗어나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기도 많이 하는 이들의 내면이 아집과 무지의 악순환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기도 많이 하면서 꼭 같이 해야 하는 일은 ‘자기성찰’과 ‘하느님 이해’입니다. ‘자기기만’과 ‘하느님 왜곡’이 기도의 결과인 경우를 정말 자주 봅니다."

p.162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 그것이 그리스도의 요청입니다. 주님이 강제로 문을 열지 않는데, 우리가 남의 마음 문을 함부로 열어젖힐 수는 없지요. 전도하는 성도들에게 맡겨진 책임의 범위는 문을 두드리기까지입니다. 그 음성을 들려주는 것과 더불어 거하는 것은 주님의 몫입니다."

p.163
"초대교회에서 누군가가 세례 받으려면 평균 3~4년은 걸렸다고 합니다. 즉 찾아온 구도자들에게서 삶의 변화와 진정성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겁니다. 삶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자기 인생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도 신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만 교리 교육을 시키고 세례를 주었으니 수년이 걸렸다는 거지요. 삶의 변화가 먼저고 교리 교육은 나중이었습니다."

p.167
"신앙은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구도의 과정입니다. 한순간 완성되어서 더이상 새로움도 놀라움도 없는 화석이 아니고, 늘 새로운 도전과 탐구 앞으로 우리를 이끄는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p.213
"영성은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고 자아를 성숙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맞대면하는 일 없이는 하느님과의 독대가 불가능합니다. 영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내면을 성찰하고 성숙시키는 다양한 배움, 훈련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 묵상이든, 기도든, 관상으로의 몰입이든 영성의 가장 핵심적 차원에는 자아와의 관계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p.214 ~ p.215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고민과 질문은 가만히 살펴보면, 나와 거리가 먼 타자들의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거리가 먼 타자로 여기고 나면 관심을 끄고, 우리가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좋을 변명거리를 개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와 바르게 관계맺는 방법을 끊임없이 일깨울 것입니다."

"영성은 타자와 친밀성의 관계를 맺는 과정입니다. 자신과 화해하는 것과 타자를 대면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타자란 나 자신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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