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사람에 대한 예의 본문

雜食性 人間

사람에 대한 예의

하나 뿐인 마음 2021. 2. 21. 13:21

권석천 지음. 어크로스.

사람에 대한 예의... 신앙의 위기든 세상의 위기든 지금이라도 되돌리지 않으면, 어떻게라도 멈춰서지 않으면 추락의 속도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다그치는데 막상 내 그릇을 들여다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믿음에도, 세상에도, 인간 관계에도 명민하게 깨어 있되 지나치게 예민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싶지만 가야할 방향을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성급해지고 오히려 실수를 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이만큼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갈림길에서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길 위에 서 있을 수 없다. 길 아닌 곳에 서 있을 각오 정도는 해야 길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만 더 고단한 삶을 살아야겠다. 


p.14

"착한 갑질과 나쁜 갑질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p.16
"내가 계속 무엇이든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미줄처럼 쳐진 관계의 그물에 주목하고 싶다. 그 관계의 그물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주시하고자 한다. 남의 잘못은 중요하고 나의 허물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나를, 다른 이의 막말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웃자고 하는 소리”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나를, 무시(無時)로 반칙하며 살면서도 세상엔 원칙의 청진기를 대는 나를."

p.16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나쁘다. 알고 짓는 죄는 반성할 수나 있다. 모르고 짓는 죄는 반성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살았을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자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다."

p.16
"‘나도 별 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p.34
"피해자에게 “합의하고 잊어버리라”고 종용하고, 가해자에게 “반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누구의 편인가.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p.36
"한없이 약한 인간도 악마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가족, 친구,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악에 무릎 꿇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한계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p.39
"그들을 빈곤에 빠뜨린 것은, 그들을 가정폭력과 알코올 중독으로 밀어 넣는 것은 그들의 문화가 아니라 빈곤 그 자체다. 그들이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판단한 건 ‘편리한’ 선입견이었다."

p.41
"악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다. 위에서 물이 넘치면 아래로 내려가듯이 악은 계속해서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흘러내린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사에게 되돌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부하에게 내려간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대상은 눈앞의 불특정 다수다."

p.42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들은 저 멀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그들은 구속되지도,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범죄와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너무도 단정한 얼굴에 깔끔한 옷차림, 나무랄 데 없는 매너를 갖추고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고, 구세군 자선함에 돈을 넣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멋진 선배, 착한 배우자, 좋은 엄마, 자상한 아빠다."

p.43
"눈앞의 가해자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밑변의 돌들만 사라지는 악의 피라미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p.50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어떤 관계든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는 적정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p.59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p.127
"<주기도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바라고 희망한다.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 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며."

p.127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惡)들이 거악(巨惡)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결과가 아닌가."

p.177
"침묵의 문화는 침묵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란 굳건한 믿음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 시간을 늦출 뿐이다. 침묵하는 자도 희생될 수밖에 없다.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자들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영화 <갱스터 스쿼드>)는 것은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진리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은 수정되어야 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해치는 흉기다."

p.194
"직업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직업도 있는 것이다. 직업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방편일 뿐이다. 삶을 직업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업을 삶에 맞춰야 한다."

p.208
"너무 늦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의 비루함을 깨닫고, 유턴을 해야겠다고 용기 내는 것이다. 그러할 때 부끄러움은 힘이 된다. 온전히 부끄러움의 힘으로 내가 달아났던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다시 돌아온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p.320
"정의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피해자나 그 가족이 완전하지 않다고, 결함이 있다고, 그들을 조롱하거나 비켜가서는 안 된다. ‘순수한 피해자’라는 도식은 피해자의 발언권을 박탈하려는 수작이다."

p.320
"정의는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 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향해야 하는 건 결과로서의 정의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정의다."

'雜食性 人間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쉼, 주님을 만나는 시간  (0) 2021.03.12
음악의 언어  (0) 2021.03.06
위쪽으로 떨어지다  (0) 2021.02.16
혼자 가는 먼 집  (0) 2021.02.10
그냥, 사람  (2) 2021.02.0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