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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그냥, 사람 본문

雜食性 人間

그냥, 사람

하나 뿐인 마음 2021. 2. 6. 09:11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지도를 보는 것 같았다. 누구는 찾아서 도달하기 위해 지도를 볼 테고, 누구는 여기가 어디쯤인가 싶어, 어떤 이는 발 닿을 기회가 되면 찾아가 보려고...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을 보았나.

 

책을 읽는 동안 화를 낼 수 있다는 사실마저 '가진 자'의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불공정한 무언가에 대해서, 희생 당한 이들에 대해서, 일부 정치인에 대해서, 인권을 유린한 기업에 대해서, 쉽사리 분노를 표출하고 야단치듯 글을 쓰거나 하찮은 대상(이런 것이 있단 말인가!)을 다루듯 얕보거나, 대접해주는 듯 존대를 하거나... 하지만 자녀들의 학교를 짓기 위해서 그저 그 동네에 사는 것 뿐인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부모들은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그 모든 사건들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인 것처럼 분노하고 비난했지만 엄연히 나는 비켜 있는 자였고 운명을 온전히 함께 짊어질 수는 없었다. 그들은 만족할 수 없는데, 나는 스스로 만족하고자 했다. 그래서 부끄러웠고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너무나. 나는 얼마나 교만한가.

읽고 나서 '많이 배웠다'는 말조차도 부끄러웠던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겠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걷는 이들을 위해서도.


p.22
"이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더 거대하고 더 유구한 우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우물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p.25
"글을 쓸 때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고 작은 것이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쓸 때처럼 열심히 감동하고 반성할 때가 없고,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고심할 때가 없다.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계속 쓸 수 있었다."

p.26
"사람들은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덕담처럼 했다. 선의로 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언제나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은 차별받은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 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 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

p.79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 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p.105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박종필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전자의 앎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박종필의 앎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다. 전자의 앎이 폭넓음을 지향한다면 박종필의 앎은 정확함을 지향할 것이다. ‘위험’이 가장 본질적 요소인 그런 앎이 있다."

p.124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p.124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 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p.125
"나는 장애인차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확실한 가해자이며, 이 시스템의 분명한 수혜자이다. 비장애인인 내가 이 지면에 장애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그 증거다."

p.162
"바뀌어야 할 것은 갇힌 자들이 아니라 가둔 자들이다. "


p.244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p.261
"‘그냥 사람’으로 서로 만나는 일은 그냥 되지 않는다.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물한다면 그것은 배움보다 ‘빈자리’다. 또 다른 누군가를 ‘그냥 사람’으로 만나, 그 이야기를 은전처럼 묻고 들으며 더 사랑하고 싶어질 자리. 우리에게 찾아온 누군가의 이야기는 책에서 끝나지만 배움의 끝에 우리 모두에게 “마음속 동그란 빈자리”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미류,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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